![]() |
||
| ▲ ⓒ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여름의 백야, 사랑인 줄 알았던 그리고 이로 인해 벗어날 것이라 믿었던 현실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줄리.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영화는 밤새도록 오가는 대화와 감정 속에 어느 누구 하나 정의 내릴 수 없는 혹독한 시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가 1888년 발표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대저택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남작의 딸 줄리(제시카 차스테인)와 하인 존(콜린 파렐), 그리고 하인의 약혼자인 캐서린(사만다 모튼)의 긴 하룻밤을 그린다.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무대에 올려지는 현대 연극의 대표작인 <미스 줄리>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지정 희곡으로 선정되어있을 정도로 배우들의 필수 레파토리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 역시 세계적인 공연예술학교인 뉴욕의 줄리어드 스쿨에서 연극 <미스 줄리>를 공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 |
||
| ▲ ⓒ tumblr.com | ||
이렇게 희극의 교과서와 같은 <미스 줄리>의 영화화에 있어서 연극적 요소가 다수인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대화를 주고 받는 동선을 비롯하여 제한적인 공간과 배우들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마저 한 편의 연극을 영화로 촬영한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급박한 전개와 감정몰입에 있어서 연극만큼의 전달력이랄까, 공간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없는 스크린의 감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객을 볼 수 있었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여기기엔 한없이 인생 전반의 철학적 깊이 있는 대사들이 등장하고, 희극이니만큼 관객들은 웃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진지한 그들의 대화에 숨을 멈춘다.
![]() |
||
| ▲ ⓒ 네이버 영화 | ||
“아가씨는 제게 불가능한 꿈이에요.” 그들은 꿈에 대해 서로에게 말해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최 앞뒤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던 줄리가 속내를 털어놓으며 벼랑에서 내려가야 하는데 무섭다(step down)는 말을 한다. 이에 하인 존은 한없이 올라가고 싶던 꿈에 대해 말하며 내려가는 것은 결국 떨어지는 것(fall)이라고 화답하듯 말한다. 신분을 버려도 상관없으니 지금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여자와 어떻게든 가난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자꾸만 더 올라가고 싶은 꿈을 가진 남자의 만남. 여기서 로맨스가 싹 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하인인 존을 짓궂게 놀리던 줄리는 너무 사랑해서 식음전폐하는 동화 속 왕자처럼 고통받은 적이 있다는 존의 말을 듣고, 심지어 그 여자가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존이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 줄리는 그에게 몸과 마음을 열게 된다.
![]() |
||
| ▲ ⓒ 네이버 영화 | ||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이 수십년, 아니 백몇년 전의 희극 속에서도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이자 희극의 화룡점정이다. 하룻밤을 보낸 뒤, 여자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할 준비를 하며 함께 하고자 하지만, 여름 밤 축제 앞에서 나눈 사랑은 그저 재미를 위한 것임을 이야기하는 남자. 그들의 대화 속엔 우리들에게 익숙한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뻔한 대사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을 필자는 경험했다. 겉보기엔 희극이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목소리의 떨림과 표정 속 환히 드러나는 불안함은 비극이 따로 없다. 사랑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그 남자의 얼굴에는 어젯밤 자신의 가슴 아팠던 짝사랑,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던 여자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찼던 그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동경하는 대상의 비참한 내면을 본 남자는 자신의 사랑 또한 바닥으로 떨어진 기분을 느꼈으리라. 그렇기에 그녀의 진심에 대해 더 듣고자 하지 않았고, 되려 그 마음을 이용하려는 악의를 품게 된다.
![]() |
||
| ▲ ⓒ 네이버 영화 | ||
그 악의 앞에서 둘의 각자 다른 지향점은 재미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이 더 올라갈 수 있으리란 열망에 두서없이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으리라 열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이를 듣는 여자는 냉정하게 돈이 없다는 현실과 이것저것 걱정을 앞세운다. 재밌는 것은 바로 이 다음 장면들이다. 여자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두서 없는 감정적 발언이라 여긴 남자는 멀리 떨어진 식탁 맞은 편에 가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에 옮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두 남녀는 다른 방식의 사고이지만 마치 거울로 나 자신을 바라보듯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간다. 이는 부단히 사랑에 대한 대화에만 속해 있지 않다. 매사에 명령하고 높은 콧대로 마치 자신을 조물주인양 모든 것을 쥐락펴락 하려던 귀족의 모습이 종종 폭력적인 남성성과 더불어 악의에 차 있거나 매정하리 만치 무서운 인간의 면모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에 떠는 줄리에게 존을 매몰차게 명령을 하곤 한다, ‘상냥하게 말해달라’는 그녀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 |
||
| ▲ ⓒ worldscinema.org | ||
망가진 그들의 모습 앞에 고결해 보이는 캐서린은 그녀의 약혼자인 존을 꾸짖는다. 귀족이 어떠한 행동을 하건 자신의 주제를 몰랐던 존에게 그녀는 귀족들을 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적으로 발전시켜줄 존재도 없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기에 애써 자리를 지키려던 그녀임에도 역시나 줄리와 존처럼 캐릭터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그렇게 호통쳤던 캐서린임에도 존과 줄리가 함께 도망가려 했던 현장을 마주하였을 때, 남작님에 대한 예우만 존재할 뿐 줄리를 윗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그녀의 말투에 놀라기 마련이다. 상황의 역전된 형태로 맞받아치는 존의 대사는 덤이다. “그걸 믿어?”, 도망가는 것이 존의 이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랑의 도피인지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캐서린이 던지는 대사와 ‘신이 당신들을 용서하시길’이라고 말하는 캐서린에게 받아치는 줄리의 대사는 같다. 마치 거울처럼 상대방의 모습 속에 자신이 투영되는 대화가 오고 가지만, 영화 속 세 인물은 그 것을 모르고 있다.
![]() |
||
| ▲ ⓒ tumblr.com | ||
마지막까지 위태롭게 흔들리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줄리에게 존이 내린 명령은 결국 그녀가 그토록 벗어나길 바라던 그 길이었다.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곳을 향해 어두운 터널을 지난 그녀가 밖으로 나갔을 때 맞이한 것은 강 위로 아름다운 별처럼 흩날리는 꽃잎들이었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기 위한 죽음이기도 했다. 물 속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상에 등을 기댄 것도 아닌 그 중간에서 자신의 붉은 피를 흩뿌리며 그렇게 그녀는 죽어있었다, 오필리아처럼. 죽음으로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 여정은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있던 곳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인 듯 보인다. 사랑에 미쳐서 죽음을 택한 오필리아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사한 메타포 속에 그녀는 반은 땅에, 반은 물속에 있음으로써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녀의 안타까웠던 삶을 넌지시 드러낸다.
![]() |
||
| ▲ ⓒ tumblr.com | ||
사랑, 꿈과 인생, 그 이면의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말하고 싶었던 아이러니,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알아가는 힘겨운 여정에 놓인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가 사로잡고 싶어하는 꿈이 되려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게 시야를 흐리지는 않는지, 의지와 이해를 그토록 바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욕망에 사로잡혀 동경해왔던 것들 속에 고통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사랑이 빛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 많은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지만 결국 해답을 주지 않는 철학들을 130분 동안 마주하면서 과연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는 내 자신을 알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