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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괜찮은가요 <미스틱 리버>

[THE ARTIST매거진=어한빛] ‘어둡다. 쓸쓸하다. 안쓰럽다. 그런데, 나는 괜찮은 걸까.’  영화의 끝을 알리는 검은 화면이 유독 칠흑같이 검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우리는 끝나지 않을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끝나지 않을 이유는, 그 질문과 생각이 바로 ‘나’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워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생각 축에도 끼지 못 할만큼, 가장 근본적이고 날 것인, 오롯이 ‘나’, 정확히 말해 ‘자아’를 마주 할 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누군가는 하염없이 울기만 할지도 모르겠다. 꺼내고 싶지 않아 무의식 저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이미지들을 두 눈 가득, 내면에서부터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괜찮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엔 더 나은 나와 더 건강한 자아로 이 삶을 생생하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 덕분이다. 나의 가장 아픈,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너무 아파서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다시’ 마주하는 것. 아마 이 자체가 ‘용기’이며 더 건강한 자아를 안은 나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그 첫 걸음일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힘으로 작용될지 여전히 상처-트라우마-로 남을지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2003)> 포스터. ⓒ씨네 21

  이 어렵고도 어려운 일을 왜 굳이 꺼내어 보아야만 하는지, 묻어둔 채로 사는 것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을 얼마나 처참히 무너뜨리는지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2003)>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영화가 담아낸 트라우마와 인간,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의 대인관계, 트라우마 자체의 공포가 가져오는 침울함을 보고있자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새삼 깨닫게 됨과 동시에, 이를 벗어나고자 혹은 완벽히 트라우마가 없는 척 묻어두고 사는 인간의 노력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뼈저리게 슬프며 잔혹하다.

  어두움과 불안함의 그림자가 뼛속깊이 드리워져 있는 주인공 데이브(팀 로빈스분). 그의 상처-트라우마-는 어렸을 적 소아성애자에게 당한 성폭행이다. 동네친구 지미(숀 펜분), 숀(케빈 베이컨분)과 함께 덜 마른 시멘트 위에 각자의 이름을 새기다가 정체모를 남자 두 명(경찰을 가장한 소아성애자)에게 잡혀간 데이브와 그를 바라보던 지미와 숀. 이 순간부터 이들은 철저히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거칠고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다녀온 지미, 아내의 부재로 비어있는 생활을 하는 형사 숀, 그리고 절대 지워지지않을 사건을 온 몸에 각인시키고 벗어난 척 살아가는 데이브. 지미의 19살 난 딸이 사체로 발견되면서 이들은 낯선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이때부터 한 없이 잔인해진다. 그리고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가 전하고 싶은 말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친구이지만 친구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 날의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 낯선 남자 차에 타 멀어지는 어린 데이브

 

  어둠 속에 상처와 살아가는 데이브와, 그 날이 시작되는 첫 순간을 목도한 지미와 숀, 이 셋에게 ‘대인관계’라는 말은 어쩌면 애초부터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척’, 사실은 보호막이 파열된 주체-데이브-가, 트라우마를 가진 당사자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의식을 가진 주위-지미와 숀-와 만난다는 것은 형성자체가 불가능한 관계라는 말이다.

   
▲ 상처가 떠오른 데이브의 얼굴

Dave’s dead. I don’t know who came out of that cellar, but it sure as shit wasn’t Dave!

데이브는 죽었어. 그 지하실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 누군지 나도 몰라.

확실한건, 그건 데이브가 아니었다는 거야.                             -데이브 대사 中-

   
▲ 형사 숀과 지미의 대화

What if you or I had gotten into that car instead of Dave Boyle?

데이브 대신에 너나 내가 그 차를 탔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미 대사 中-

   
▲ 친구여서 판단이 흐려진다는 파트너에게 친구가 아니라 답하는 숀

He’s not my friend. If Dave is criminal, I’ll put the cuffs on faster your handcuffs.

친구 아녜요. 만약 데이브가 범인이라면 내가 먼저 수갑 채웁니다.      -숀 대사 中-

  지미의 딸을 죽인 범인으로 데이브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하필, 이 날에 데이브가 피범벅이 된 채 새벽에 집으로 들어와 아내에게 거짓말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사실 그는, 집으로 오는 도중 차 안에서 어린 남학생에게 성적행위를 강요하고 있는 한 남자를 홧김에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데이브는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과, 자신의 상처가 주는 공포감에 횡설수설하고, 점점 데이브를 믿지 못 한 아내 셀레스트(마샤 게이 하든분)가 지미에게, ‘데이브가 죽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데이브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지미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을 경찰보다 먼저 찾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

   
▲ 지미에게 죽임을 당하는 데이브

  친구의 일이 ‘남의 일’이 되어버리고, 내 스스로를 추스를 힘도 없이 나약한 이들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상처의 공포와 두려움이 나를 먹어버리도록 내 스스로 ‘숨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당사자를 보는-심지어 순간을 함께 보았던- 주위가 이 모든 것을 덮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 세 가지 질문을 생각해 보면,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섬뜩하리만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나의 몸과 나의 정신 모두가 없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노력하게 된다. 그 노력의 시작이 데이브의 상처처럼, 우리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인 것이다. 데이브만 보아도 알 듯, 그 고통은 엄청나고 냉혹하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만 한다. 더 나은, 더 건강한 나와 대인관계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나의 깊고 어두운 그림자의 실체를 드러내 마주하는 것은, 분명 숨이 턱- 막혀 올만큼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마주함의 고통이 엄청날지라도, 상처를 바라볼 용기가 곧,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나아갈 희망임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에 의해 일어난 작용이라는 점에서 그 희망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보자. 나는, 괜찮은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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