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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늙은이 잡아 팔자 한 번 고쳐보자!

현대판 사악한 신데렐라 스토리

영화, 은밀한 유혹

   
▲ 영화 <은밀한 유혹> 포스터

  신데렐라는 공주들 중에서 단연 인기다. 난쟁이들을 거느리는 백설공주를 제치고 남자들의 승부욕을 자극시킨다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비련의 인어공주, 라푼젤, 오로라, 자스민, 요즘에 뜨는 엘사까지 밀어낸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탄생된다. 영화 ‘귀여운 여인’, ‘내남자친구 이야기’, ‘퀸카로 살아남는 법’,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드라마) 등이 그렇다.

 재투성이 소녀가 남자 하나 잘 만나 팔자 고친다는 이 전형적인 스토리는 그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진다. 고전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신데렐라는 그저 착하다. 구박하는 계모와 언니들을 독살하지도 왕자의 돈만을 보고 반하지도 않는다. 둘째, 손가락 까딱하지 않아도 (단순히 그녀가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요정과 동물들이 다 알아서 그녀를 공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현대판 신데렐라스토리에는 이 두 가지 요소에 어울리지 않는 보다 ‘주체적인’ 신데렐라 등이 등장한다. 이 신데렐라들은 착하지도 순종적이지도 그저 “어떡해, 어떡해!”를 외치며 누군가 다 해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왕자를 차지하려 전략을 세우고 경쟁자를 물리치며 스스로 호박마차를 부르고 대출받은 돈으로 드레스를 산다. 영화 <은밀한 유혹>의 지연(임수정)이 그런 신데렐라다. 심지어 이 신데렐라는 ‘착하지’조차 않다.

   
▲ 영화 <은밀한 유혹> 스틸컷

  주인공 지연(임수정)은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며 마카오에서 근근이 살아간다.어느 날 성열(유연석)이 나타나 그녀에게 카지노 재벌 김석구(이경영)를 유혹해 그의 재산을 가로채자는 위험한 제안을 한다. 회장을 잘 아는 성열의 지도에 따라 지연은 간병인으로 위장하여 회장을 돌보며 서서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기까지는 여타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영화 <은밀한 유혹> 스틸컷

 그러나 그녀가 회장과 결혼한 다음날, 회장은 갑작스럽게 죽어버리고 그녀와 성열은 그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갑자기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벗어나 추리물, 스릴러물이 된다. 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계획을 세웠는가. 회장은 왜 갑작스럽게 죽었나. 영화는 관객을 추리에 참여시키며 일반적인 신데렐라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연이 어떻게 공중에 뜬 재산을 차지하는지 보여준다.

 모함으로 인해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지연은 그제서야 수동적인 신데렐라 탈을 깨고 누명을 벗기 위해 유리구두를 내던진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수동적인’ 신데렐라 뿐만이 아니라 ‘착한’ 신데렐라 코스프레도 하지 않는다. 성열에게 계속해서 “못하겠어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를 외쳐대던 그녀였지만 사실은 그녀도 회장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고 회장의 돈을 보고 달려드는 파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 영화 <은밀한 유혹> 스틸컷

 회장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그의 시체 앞에서 증거를 꾸며내는 동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지연은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정말로 회장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냐’는 성열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그저 가볍운 미소를 흘릴 뿐이다.

   
▲ 영화 <은밀한 유혹> 스틸컷

  가벼운 오락거리로 즐기기 좋은 영화이나 부실한 개연성, 헛웃음을 지어내는 뜬금없는 이야기 전개, 부자연스러운 연극적 설정, 유치한 연출 등이 몰입을 방해한다. 신데렐라스토리를 스릴러물로 만들어내는 시도는 좋았으나 스킬이 부족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임수정이 3년의 공백을 지나 선택한 영화이기에 임수정을 좋아하는 이들은 기대가 클지 모른다. 그녀의 연기가 결코 전보다 못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빛을 발하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여성(혹은 남성)들이 왕자님(혹은 공주님)이 짜란 하고 나타나 자신을 비루한 인생에서 구해주길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 12시간을 훌쩍 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린 후에 지옥철에 몸을 싣고 좁은 자취방으로 몸을 구겨 넣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꿈조차 꾸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런 꿈을 꾸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처럼 “그리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얼렁뚱땅 끝나지 않는다. 우리 삶은 바로 그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은 날아오는 가스비 고지서, 변기에 튄 오줌, 이불 속 까칠한 뒷꿈치로 이어진다. 우리의 삶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끝나버리기도 하고 끝날 때가 한창 지났는데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왕자님의 어머니가 백설공주 계모 같을 수 있고 왕자가 알고보니 개구리였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은 누군가에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말을 뒤집어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누워 새치를 뽑아주는 일상을 함께 견디는 일일지 모른다. 

 영화는 영화대로 즐겁게 즐기자.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그 좁은 어둠 속에서 나와 다시 ‘현실’을 살아내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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