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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진실이라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의심을

[디아티스트매거진=김성현]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 당연히 진실이라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의심을..

18세의 소년,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예리한 칼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2명의 배심원 중 그 누구도 소년의 무죄를 예상하고 있지 않다. 단 1명을 제외하곤 말이다.
 

   
▲ 영화 <12 ANGRY MEN> 포스터

1957년 제작된 이 영화는 소년의 존속살인 혐의에 대하여, 12명들의 배심원들이 토론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판사는 말한다.

“유죄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 의심’이 있다면 무죄 판결을 내리고, ‘합리적 의심’이 없다면 유죄 판결을 내려야한다. 유죄는 곧 사형을 뜻한다.”

즉 12명의 배심원들이 한 사람의 목숨을 결정짓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게 된 것이다.

   
▲ 영화 <12 ANGRY MEN> 中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을 결정짓는 사람들의 태도는 굉장히 불성실하고 진지하지 못하다.

1년 중 가장 더운 날 에어컨도, 선풍기도 나오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얼른 판결을 끝내고 싶어 한다.

각자의 사정은 다양하다. 증권시세를 신경 쓰는 사람, 야구 관람을 해야 하는 사람, 감기에 걸려 짜증이 난 사람, 자신의 가출한 아들을 용의자인 소년에 투영시켜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 등.

각자만의 사연과 사정으로 인해 이들은 판결을 빨리 끝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이 소년의 유죄를 의심한다.

무죄라는 것이 아니라, 유죄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 한 사람의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다.
 

   
▲ 더위로 판결이 일찍 끝나기만 바라는 배심원

‘합리적 의심’이란 무엇인가?

유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나 의심 등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는 의심할만한 근거가 하나라도 있다면,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합리적 의심이 등장한다. 소년을 유죄로 판결할 만한 대부분의 증거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이루어진다. 살해도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증인들의 증언에 대한 의심까지 이루어진다. 

물론 다분히 ‘합리적’ 의심이다. 
 

영화에서 소년은 용의자로 잡혀오지만, 엄밀히 말해 용의자가 범인의 또 다른 말은 아니다.
이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잘 나와 있는데, 소년이 전과 5범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는 처음부터 범인으로 취급받는다. 편견이 진실을 가리며, 증거가 아닌 정황만으로 판단 되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편견과 정황보다 ‘증거’에 초점을 맞추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배심원조차 소년을 유죄라고 판단한다.

사실, 즉 ‘FACT’로만 이 사건을 바라보아도, 소년은 유죄가 분명하다고 단정 짓는다.

그는 소년의 유죄를 확신한다.
 

   
▲ 영화 <12 ANGRY MEN> 中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맹신하는 ‘사실(FACT)’인 목격자들의 증언조차 잘못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리고 마침내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잘못됐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 그조차 마음을 바꾸게 된다.

유일한 목격자들의 각각의 증언은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심원들이 합리적 의심을 갖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그들이 했던 각각의 증언들이 서로 모순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배심원들은 목격자들이 증언에 앞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서약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의 증언에는 의심 할 가능성조차 열어두지 않는다. 그들이 증언 도중에 실수를 했거나, 증언이 왜곡됐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심할 만한 모든 것을 다시금 되살펴 봤을 때, 그들은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희박하더라도 미약하게 존재했던 일말의 가능성이 한 소년의 인생을 바꾸게 된 것이다. 
 

   
▲ 영화 <12 ANGRY MEN> 中

영화에서 계속적으로 제기되는 ‘합리적 의심’. 

‘Reasonable Doubt’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TRUTH)과 사실(FACT)이 얼마든지 왜곡 될 수 있으며 둘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팩트(FACT)’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며 모든 문제를 ‘사실’로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사실자체가 왜곡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실의 왜곡은 우리의 편견과 아집, 때로는 개인적 사정이나 환경적 문제 때문에 발생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의심의 여지가 생기며 여론이 변화하는 영화 속 내용처럼, 오직 ‘합리적 의심’만이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

즉 맹목적인 신뢰보다는 합리적 의심이 더 가치 있으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목표인 것이다.

   
▲ 12인의 배심원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합리적 의심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매스 미디어를 비롯해 여러 뉴미디어나 SNS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믿는 이들이 많다. 파편화 된 정보가 전부인 것 처럼 믿고 행동한다.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진실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 사실 이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합리적 의심 없이 도출 된 의사결정이 진실 그 자체라고 확신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영화에서 ‘합리적 의심’에 의해 제일 먼저 유죄를 의심했던 유일한 단 한 명의 배심원.
그처럼 깨어있는 사고와 함께 어떠한 상황에서든 그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근거없이 무턱대고 무죄를 주장하며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죄로 판단됐던 증거 중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심을 해보는 것이다.
 

   
▲ 유일하게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단 한 명의 배심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맹목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모든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갈 것인지, ‘합리적 의심’에 의해 선별 된 가치 있는 진실에 집중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동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 영화 <12 ANGRY MEN>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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