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성현]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길버트 카플란 (Gilbert Kaplan)
1965년, 그는 경영대학원에 다녔고 당시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다. 말러라는 작곡가 작품에는 관심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던 그는 카네기홀에서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하나의 음악이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마치 번개가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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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청년의 인생을 바꾼 말러 2번을 지휘했던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 ||
그 날이후 그 청년은 본인 손으로 직접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지휘하겠다는 꿈을 품게된다.
말러 교향곡 2번은 어떠한 작품인가?
말러의 교향곡이 대부분이 그러하듯 대작이다.
합창파트까지 있는 그야말로 대작 중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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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러 2번의 공연모습 | ||
말러의 교향곡,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교향곡의 진정한 정수라며 치켜세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말러의 교향곡은 지루하고 어려우며 지나치게 길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말러가 최근들어 점점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곡가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가 작곡한 교향곡은 오선지 속에 세워진 거대한 또 하나의 세계라는 점이다.
부활의 1악장은 ‘죽음’에서 시작한다. 죽음에서 시작한 1악장은 느리고 진중한 2악장을 지나며 죽은 자가 살아있던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3악장에서는 쓸쓸함이 돋보이며 과거를 회상한다. 이어진 4악장은 비장하다.
“인간은 고통 속에 존재한다”하며 고독과 쓸쓸함의 극을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마지막 5악장에서 소프라노와 알토.
두 성악가와 대규모 합창단이 “일어서라! 다시 일어서!” “나는 죽지 않으리라!”라고 소리치며, “부활하라,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노래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무한한 영생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과 같은 구조이지만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사실 말러는 자신을 베토벤을 너무나 의식했으며 심지어 자신을 베토벤과 동일시했다. 때문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이 합창으로 장식된다는 점을 상기시켜보면 ‘부활’의 마지막 악장이 합창구조로 작곡된 것은 낯선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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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미완성까지 포함하여 총 10개의 교향곡을 세상에 남긴 작곡가 ‘말러’ | ||
다시 카플란의 이야기로 돌아와 무모한 꿈을 꾸었던 23살의 청년은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하고 금융인의 성지인 ‘월스트리트’에 입성하여 금융인으로의 생활을 하게된다.
그리고 2년만에 그는 금융 전문 잡지인 ‘Institutional Investor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를 창간한다.
20대 청년이 차린 잡지회사를 놀랍게도 소위 대박이 나고, 그는 성공한 금융인으로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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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버트 카플란이 창간한 잡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 ||
성공한 금융인 ‘길버트 카플란’, 하지만 그는 23살때 느꼈던 전율과 꿈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30대에 이르러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차근차근 걸음마를 뗀다.
악보 읽는 법을 배우고, 화성학을 배우고, 대위법을 배우고 지휘도 배운다.
금융잡지 CEO이지만 하루에 무조건 5시간씩을 음악공부에 몰두했다고 한다.
단 1곡,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위한 준비였다.
그리고 1983년에 이르러서 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신의 꿈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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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꿈을 펼치게 된 ‘길버트 카플란’ | ||
그는 본인이 18년전 공연을 봤던 카네기 홀에서 심지어 오케스트라도 그 당시의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섭외했다.
물론 객석에는 자신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초대권으로 참석 한 이들이 전부였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냉정한 비판과 조롱 섞인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돈 많은 클래식 애호가가 오케스트라를 돈으로 사서 객기를 부렸다는 얘기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매스컴에 이름이 오른 카플란에게 지휘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말러 2번이었다. 그가 지휘 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청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의 경험은 쌓여갔고, 그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말러 2번에 있어서 만큼은 카플란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없는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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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플란, 그는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 ||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는 말러 2번에 있어서 대가가 되며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게 된다.
런던 심포니,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뉴 재팬 필하모닉,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
바이에른 국립가극장, 오슬로 필하모니,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이스라엘 필하모니
그리고 중국에서의 말러 2번 부활 초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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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레코팅까지 하게 된 ‘카플란’ | ||
후에 1987년 카플란은 런던심포니와 드디어 레코딩을 하며 앨범까지 발매하게 된다.
해당 음반은 놀랍게도 당시까지 나온 모든 말러 교향곡 음반 판매 기록을 갱신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말러 음반으로 기록된다.
당연한 평가이지만 그의 음반은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재현해낸 해석’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뉴욕에 ‘길버트 카플란 컬렉션’을 세우고, 말러에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했다.
말러 교향곡 2번의 모든 필사본과 초판본은 물론이고 음악학자와 함께 악보 연구를 하고, 500여 개에 달하는 말러의 메모를 구해 끊임없이 연구하며 말러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는 더 이상 아마추어도 아니고, 돈으로 객기를 부리는 호사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여 년의 연구끝에 말러의 오케스트라였던 빈 필하모니을 지휘하며, 클래식 레이블의 최고봉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레코딩을 하고 음반을 발매한다.
2002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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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청년의 꿈은 현실이 되었고, 역사에 남겨졌다 | ||
그는 이 연주에서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작곡가인 말러의 의도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과서같지만 그럼에도 단단하고 단호하다. 절대적이다.
사실 카플란의 지휘는 정열로 상징되는 번스타인이나, 은은함으로 대변되는 불레즈처럼 극적이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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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러 2번 교향곡, 번스타인의 지휘(좌) vs 피에르 불레즈의 지휘(우) | ||
그럼에도 카플란은 정석에 기초하여, 말러가 의도한 부활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래서 사랑받는다.
개인적으로 카플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이야기에는 ‘열정’이라는 단어가 살아숨쉬고 있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나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산다. 그리고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것을 ‘실제로’ 이루는 이는 많지 않다.
오랜시간이 걸렸지만 카플란은 포기하지 않았다.
멸시받고 조롱받았지만 그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며 종국엔 본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됐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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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플란이 이렇게 소리치는듯하다. 포기하지말라고, 꿈을 향해 돌진하라고! | ||
카플란은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두 가지 부끄러움 줄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남들 앞에서 지휘를 했을 때 당할 부끄러움이었죠.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휘를 하지 않았을 때 두고두고 제 자신이 후회하게 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전자를 택했을 뿐입니다. “
누군가는 카플란이 돈이 많아서 꿈을 이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많은 이들이 목표를 가지고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이른바 ‘현실’이라는 벽 앞에 무너진다. 좌절한다.
그렇게 점점 현실의 굴레에 속박되어 그 목표와 꿈 위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이며 기억 저편으로 잊혀진다.
하지만 카플란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희열은 꿈과 목표의 성취라는 것을!
부디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한 번뿐인 인생을 낭비하지 않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