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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마이클과 한나, 그들은 사랑일까?
[디아티스트매거진=정희진] 15세 소년 마이클은 전차 안에서 열병으로 인한 심한 구토감을 느낀다. 그에 급히 전차에서 내린 마이클은 한 여성의 도움 덕에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그 여성은 전차 검표원 한나 슈렌트로, 마이클과는 스무 살이 넘는 나이차를 가지고 있다. 후에 마이클은 한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 그는 스타킹을 신는 한나의 다리를 우연히 훔쳐보게 되면서 성적 욕망에 눈을 뜬다.
마이클과 그의 이모 격인 한나 사이의 성애를 우리는 사랑이라 볼 수 있을까? 그들은 한나의 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사랑으로서 존재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죄의식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이는 마이클과 한나의 자전거 여행 시퀀스에서 잘 드러난다. 첫째,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이클은 스스로를 세뇌시키려는 것 같은 주문을 왼다. 자신은 아무 것도 두렵지 않으며, 심지어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사랑을 정당화 시키려고 한다. 둘째, 여행 중 야외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하려는 마이클에게 식당 주인은 한나를 ‘엄마’로 지칭 해버린다. 이에 마이클은 한나에게 키스를 함으로서 세상의 차별을 한껏 비웃어줬지만 차마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이후 교회 쇼트에서 성가대 아이들의 찬송가 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한나의 모습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마이클의 생일날, 한나는 사무직으로 승진하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문맹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한나는 그 곳을 떠나게 되고, 홀로 남은 마이클은 분리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깊은 강 속에 들어가는 퇴행적인 행동을 보인다. 영화는 이 장면을 부감으로 나타냄으로서 ‘강’의 이미지가 갖는 차가운 성격 대신 아늑하고 눈부신 공간으로서의 ‘강’을 표현한다. 이는 마치 마이클이 엄마의 뱃속과 같은 아늑한 공간에 있다는 착각을 관객으로 하여금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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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스틸컷 | ||
관객의 동일시
자끄 라깡은 프로이드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욕망 이론을 제시한다. 유아기의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거울 속 ‘나’는 엄연한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나’와 타인을 구분할 수 없는 단계를 라깡은 ‘상상계’라 이름 붙였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아이는 어머니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성장하면서 보편적 질서의 세계인 ‘상징계’와 조우하게 되는데 이는 프로이드 이론에서 아버지로 대변되는 도덕적 자아와 연관 지을 수 있다. 결국 어머니와의 합일에 실패한 ‘나’는 성적 욕망인 ‘실재계’의 단계를 무의식의 저변에 숨겨버린다.
관객이 영화 속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는 행위는 상상계로의 회귀를 뜻한다. 우리는 깜깜한 영화관 속에 들어가 스크린이라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화면 속 인물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여 감정이입을 해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크린의 지시대로 마이클의 입장이 되어 한나를 관음 한다. 그리고 마이클은 알지 못하는, 한나가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한나의 비밀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그녀에게도 감정이입을 시작한다.
한나의 트라우마
한나는 ‘문맹’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칸트는 ‘계몽’을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이 미성년의 상태는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상태의 원인을 오성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닌 타인의 지도 없이는 스스로의 오성을 사용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나 역시 결단과 용기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을 테지만 계속해서 숨기려고만 함으로써 타인의 지도 없이 스스로의 오성을 사용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녀의 불행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맹은 무지와 연결되어 그녀는 유태인 학살에 일조했지만 그런 자신의 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뻔뻔할 만큼 순수하고 정직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융에게서 정신질환이란 집단 무의식의 틀에 갇혀 주체적 자아를 세우지 못하는 것인데, 이 입장에서 한나는 나치 정권이 정립한 집단 무의식에서 말미암은 또 다른 희생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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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스틸컷 | ||
마이클의 한나에 대한 애증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 법정에서 피고인 신분의 한나를 발견한다. 관객이 앞서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때 마이클 역시 스크린 속 인물들 중 유일하게 그녀의 비밀을 인식하게 되면서 한나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녀가 문맹이기에 가지지 못하는 죄의식을 마이클은 대신 가지게 되고 그렇기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아가는 등 나름의 속죄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이클은 한나에게 애증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삶의 의미를 찾은 한나
한나는 마이클이 보내주는 녹음 테이프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글 배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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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스틸컷 | ||
영화는 한나가 마침내 삶의 희망을 찾게 되는 과정을 녹음을 하는 마이클과 그것을 듣는 한나 사이를 몽타주 시퀀스로 빠르게 교차 편집함으로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한나는 예전과 같은 마이클과의 관계를 꿈꾸면서 문맹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마이클은 여전히 한나를 애증하고 있다. 이는 답장을 달라는 한나의 편지를 수납함에 발로 밀어 넣는 마이클의 행동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후 한나는 20년의 교도소 생활을 끝내고 가석방 확정을 받게 된다. 이에 마이클은 처음으로 한나를 만나러 가고, 거기서 그는 나치 친위대로서의 과거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묻는다. 한나는 문맹에서는 벗어났지만 죽은 사람은 죽은 거라는 식의 여전히 무지한 태도를 보이고, 마이클은 그런 그녀에게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읽은 한나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줬던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고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극형으로 스스로를 단죄했던 것처럼 자살로서 그녀 역시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마이클의 치유
한나는 자신의 돈을 유태인 생존자의 딸에게 전달해달라는 유언장을 남긴다. 이 같은 그녀의 속죄를 통해 마이클 역시 한나와의 동일시에서 비롯된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되며, 스스로는 죄의식을 느끼는데 자신이 동일시하는 대상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애증의 감정이 마침내 씻겨나가면서 처음으로 한나와의 관계를 자신이 애정하는 타자에게 얘기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