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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지막 왕비, 진실과 픽션 사이

[디아티스트매거진=이해나] 영화는 제작단계에서 어느 포인트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격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달라진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해도, 그 인물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영화 전반적인 이미지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의 무거움 대신 궁중문화의 흥미로움을 선택했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포스터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하면, 사람들은 흔히 ‘디저트를 좋아하는 프랑스 왕비’, ‘아름다운 드레스’, ‘화려한 궁중문화’ 등을 떠올린다. 필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6년 개봉 당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그저 ‘아! 참 예쁜 영화구나.’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주 뒤로 다가온 프랑스 여행을 앞둔 지금, 베르사유 궁전을 관광할 생각에 들떠 프랑스 혁명 전후의 역사를 공부하고 다시 본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생각보다 꽤 사실에 입각해 섬세히 만든 영화였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이 들어서 공부하고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대기에서 중요한 역사적 포인트들은 영화에서 짧은 대사, 스치는 장면으로 조금씩은 다 건드렸다. 그 포인트들이 순식간에 휙 휙- 지나가서 그렇지, 자세히 봐야 한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1. 서명 옆에 번진 잉크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 장면. 루이 15세, 루이 16세,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결혼 약정서에 서명한다. 당시 15살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아이의 손으로 삐뚤삐뚤한 서명 끝에 커다란 잉크 얼룩을 남기는 영화 속 장면이다. 이는 유독 그녀의 차례에 펜이 말을 듣지 않았는지 잉크가 튀었고 모두가 이를 불길한 징조라고 수군거렸다고 사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2. 루이 15세의 정부, 뒤바리 부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첫날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보고에 어떻게 ‘아무 일도 없을 수 있느냐’며 어이없어 하는 루이 15세. 그도 그럴 것이 루이 15세는 방탕한 성생활의 일인자로서, 매일 밤 ‘아무 일도 없는’ 손자 부부가 안타까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옆에는 정부 뒤바리 백작부인. 그녀는 고급창녀 출신으로, 왕궁 안의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하층계급 출신에, 교양 없고 허영심 가득한데, 왕이 예뻐한다는 이유로 그 옆에 찰싹 붙어있으니 곱게 보일 리가.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3. “오늘은 베르사유에 사람들이 많이 오셨군요.”

뒤바리 부인에게 마리 앙투아네트가 건넨 짧은 한 마디. 영화에선 가볍게 지나갔지만 여기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어가 서툴러 어리버리한 마리 앙투아네트 곁에는 항상 공주들이(루이 15세의 딸들) 뒤따랐다. 그녀들은 시종일관 뒤바리 부인을 뒷담화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연스럽게 뒤바리 부인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예법에 따르면 베르사유 궁에서는 서열이 낮은 부인이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부인에게 먼저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세자비로서 궁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부인이었고, 따라서 뒤바리 부인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를 번번히 무시했고 화가 난 뒤바리 부인은 이를 루이 15세에게 찔러넣었다. 루이 15세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귀여운 손자며느리지만, 사랑하는 애첩의 말 또한 무시할 순 없었다. 국왕의 체면도 있거늘, 두 여인의 기싸움은 지루한 베르사유 궁에 단비 같은 가십인지라 모두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는 충직한 대사를 통해 프랑스에서 막내딸의 모든 일상을 자세히 보고 받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와 뒤바리 부인의 신경전은 자칫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을 만큼 한참 이어졌고 결국 루이 15세가 노한다. 그제서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급한 불은 꺼야 했으므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쥐어짜듯이 억지로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건넨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오늘은 베르사유에 사람들이 많이 오셨군요.” 이는 전대미문의 운명적 위력을 지닌 아주 유명한 말로 역사에 남았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4. 잠자리가 없는 별난 부부의 진짜 이유

영화에서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선뜻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 그 이유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실 루이 16세는 포경의 결함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관계 시도조차 못했다고 한다. 지극히 소심한 남편으로 인해 이 부부는 7년간 자식이 없었고, 이를 둘러싼 궁중 사람들은 모두가 수군거리며 ‘밉상’ 마리 앙투아네트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들과 놀아난다는 온갖 루머로까지 퍼지게 된다. 또한 영화에는 루이 16세가 사냥 나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이 16세는 일부러 남자다움을 과시하려고 보란 듯이 근육 쓰는 일에 몰두하며 자신이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티를 냈다고 한다. 루이 16세는 의사가 왕진하고, 오스트리아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까지 찾아오고 나서야 그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았으며 마침내 4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진작 해결할 수 있었는데 참 오래 걸렸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5. 오페라를 보고 박수를 치다

프랑스 왕실에서는 공연 도중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페라를 재미있게 보고 혼자 열광적으로 박수를 친다. 그러자 극장 안의 사람들이 얼떨결에 따라서 박수를 친다. 이건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저 천진난만한 소녀라서 박수를 친 게 아니다. 그 오페라는 자신의 음악선생 글루크의 작품이었고, 글루크는 오스트리아인으로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올 때 함께 데려온 사람이다. 글루크는 음악가들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오페라 극장의 폭군이었다. 초반 자신의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같은 나라 사람인 글루크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지 않도록, 일부러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고, 모든 왕가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따르게 만들었다. 이는 음악사상 한 사건이 되었고, 차가운 프랑스를 향한 젊은 왕비 최초의 성공적인 시위였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6.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머리

왕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사치와 디저트로 풀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에서도 그녀의 화려한 머리가 눈요깃거리를 한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머리를 가면 갈수록 복잡하고 풍성하고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만들었다. 영화 속 스치는 장면이지만 그녀 머리 위에 얹은 배 장식이 그 정점을 찍는다. 이는 당시 프랑스가 영국과의 해전에서 승리를 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기쁨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결국 해전에서 쓰인 배의 모형을 머리에 얹게 되었다고. 자칫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왕비의 이러한 헤어스타일은 당시 프랑스의 패션 유행으로 번졌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가 베르사유 궁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동생의 머리를 보고 ‘오늘 네 머리가 멋지구나. 거기에 애완동물을 기르거나 다른 걸 둬도 되겠는걸.’ 놀라워하는 장면이 영화에도 나온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머리 장식이 모두 음식이었다는 것. 포마드 기름, 쇠기름, 밀가루 등을 동원해 머리 장식에 힘을 썼다. 허나, 당시 프랑스는 흉년이 들어 빵값이 치솟았을 시기이며, 서민들은 비싼 물가에 분노하게 된다. 루이 16세가 정권을 잡았을 당시 프랑스는 다른 나라로부터 빚을 져가며 돈을 빌릴 만큼 재정 악화가 심각한 때였다. 그런 와중에 왕족과 귀족들의 사치스러움을 향한 시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후에 프랑스혁명으로 번진다.

   
▲ ⓒ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컷

7. 왕비의 마지막을 안 보여준 영화

다들 아시겠지만, 프랑스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 당하며 삶을 마감한다. 마냥 아기자기하던 이 영화도 중후반부터 분위기가 무거워지는데, 이는 베르사유 영광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알리기 때문일까.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폭동을 벌이지만, 영화는 성난 시민들을 향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착잡한 표정 위주로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녀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대피하는 장면이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이들은 사실 오스트리아로 도망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발각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왕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는 길이었으니. 그래서 결국 이들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서글픈 노을 석양 뒤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어요’ 라며 쓸쓸히 웃는 프랑스 마지막 왕비. 단두대까지 갈 것도 없이 영화가 여기서 막을 내린 데에는, 지극히 평범했던 여자가 오랜 세월 악마 같은 소문에 휩싸이며 죽어서도 편안하지 못했을 그녀를 향한 뒤늦은 예우인 건 아닐지.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버티라고 했던가. 그러기엔 너무 어렸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소녀가 덜컥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혼자 견뎌야 했던 소외감, 따돌림, 책임감, 그리고 세상의 짐들. 그녀가 바깥으로 겉돌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할 당시에는 호평보단 혹평이 많았다. ‘영화 전개방식이 뜬금없다, 너무 가볍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루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다, 너무 갑자기 끝이 났다.’ 등등. 하지만 한 역사적 인물의 질풍노도 인생을 담기에 런닝타임 2시간은 부족할뿐더러,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애초에 화려한 궁중문화 위주로 예고함으로써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볍게 보여지기로 작정한 영화에 진중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다만, 이 영화는 ‘그래도’ 필요한 내용들은 충실히 담아내려 했다는 것.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거운 역사 영화가 아닌, 왕비 개인의 입장을 변호하는 작품이다. 왕비는 항상 우아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데, 결국 그녀도 그 나이대 또래들처럼 멋부리고 놀기 좋아하는 철없는 아가씨였다. 다만, 직책이 왕비인 게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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