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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초점이 나간 회색 빛 뉴욕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스티브 쿠건이 받는 전화 너머의 롭 브라이든은 이탈리아에서의 6번의 점심을 제안한다. 기존 BBC 방영 영화였던 <더 트립(2010)>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6번의 점심은 6번의 에피소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트립(2010)>에서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중 윌리엄 위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반면, 이번 <더 트립 투 이탈리아(2014)> 에서는 조지 고든 바이런과 퍼시 셸리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낭만주의에 곁들여 와인의 고향인 이탈리아의 해안을 따라 출발하는 이야기는 수필이지만 대화의 형태로, 때로는 풍경과 사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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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umblr.com | ||
첫 여행의 출발부터 롭은 여행 관광 안내서를 대놓고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초점이 나가있던 뉴욕의 풍경과는 다르게 또렷하고 명확하게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탈리아 전경이 나오고 구부러진 길을 따라 내려오는 미니(미니쿠퍼).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여행 홍보 비즈니스에 충실한 영화이기도 하다. 음식이 나오는 순간의 클로즈업과 메뉴 이름을 읊는 것은 기본이며, 이에 곁들여 “훌륭하군!”이라는 말 한마디면, 당장에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고 그들이 간 레스토랑에서 같은 메뉴를 시켜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아름다운 음식 옆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자연은 실망도 안 주고 거절도 안 해.”
황혼의 나이에 접어드는 두 배우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다가 그들을 등지고 먼 바다를 응시하며 던지는 이 대사는 어딘지 모르게 아리면서도 공감하며 풍경에 몸을 맡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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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umblr.com | ||
낭만주의가 주제인 만큼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유머 가득한 이 영화는 ‘드립 투 이탈리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드립과 애드립의 절정을 달린다. 기본적인 시나리오가 겨우 50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이 몰입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진행했다는 후문. 글도 엉덩이로 쓰는데, 연기마저 엉덩이로 쓴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공들인 배우들의 열정 덕에 이들이 펼친 넘치는 드립력은 필자를 자지러지게 웃게 만들었다. 특히나 롭 브라이든은 성대모사를 자주 선보이는데, 그 중 휴 그랜트 성대모사는 단연 일품이다. 그의 억양과 말더듬는 느낌부터 얼굴 근육의 섬세한 움직임까지 유사하다. ‘피에몬테’에서의 첫 식사장면 중 이탈리아 해안가를 몰고 다니게 된 미니에 대해 대화하면서 <이탈리안 잡(1969)>을 시작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를 바탕으로 최고의 드립 장면이 나온다. 필자가 보던 영화관 가득히 웃음을 참지 못한 채 폭소하는 관객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던 현장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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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umblr.com | ||
드립과 유머가 가득하다고 해서 가벼운 영화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시적인 은유들이 가득한 영화인만큼 여러 문학적인 언급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과 셸리에 대한 언급 뿐만이 아니라 대화 내내 비유의 일환으로 시의 일부를 읊는 것은 기본이다. 와인을 홀짝이면서 동시에 차오르는 교양의 풍경이 그려지는가? 여기에 더불어 이 영화의 기반에 깔린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방문하는 관광지는 모두 셸리와 바이런이 망명하며 죽기 전까지 머무른 곳들로 그 곳에는 여기저기 죽음들이 놓여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묻히면 죽음도 아름다울 거야.”
라는 셸리의 묘비명이 어딘지 모르게 영화 내내 비춰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빛 속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바닷가 앞에서 ‘영안실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두 배우의 모습 속에서도 나이 들어가는 황혼에 대한 이해와 거부가 동시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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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영화 중 반복적으로 나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마지막인 ‘황혼(Im Abendrot)’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황혼의 시기에서 낭만주의에 젖어 대화하는 그들은 때로는 감상적이며 때로는 시니컬하다. 재미있는 것은 롭과 스티븐의 딜레마가 교차되는 지점들이다. 배우인 그들은 스티브가 상대적으로 롭보다 연기에 있어 좀 더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연기에 확신없던 롭은 이제 막 헐리웃에 진출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연기 정체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조언을 했던 스티브의 행동이 질투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폰타넬레 지하묘지에서는 ‘햄릿’의 대사를 따와 결정적 비수를 던진다.
“나도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그 재주는 어디로 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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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에서 포토그래퍼와 사랑을 나누었던 스티브는 막상 이번 여행에서는 그녀의 손길에 대꾸하지 않게 되고, 가정적이어 보이던 롭은 배를 항해하며 만난 여인과 하룻밤 사랑을 나눈 뒤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을 가서 만나는 낯선 이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원래 자신이 존재하던 곳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롭의 전화 장면을 통해 떠올릴 수 있다. 헐리웃에 진출하게 된 기쁜 소식을 전달하려는 롭의 말보다는 집안일이 더욱 급한 아내는 항상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곤 한다. 그에 반해 먼저 전화오는 하룻밤의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가 장난스레 던지는 휴 그랜트 성대모사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는 여유가 있는 까닭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디션을 위해 준비하던 대사처럼 “행복하지만, 그걸 다 손에 쥐고 있을 여유가 없어졌어.”라는 말이 슬프게만 들린다. 그렇다면 도덕성은 어디로 갔는가? 이에 대해 롭은 이미 앞서 카사노바의 책을 스티브와 공유하며 언급한다.
“도덕심이야 있겠지. 어디 뒀을지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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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롭의 딜레마를 뒤따라 스티브는 뒤늦게 가족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보인다. LA로 가는 롭과 반대로 LA의 집을 팔고 가족들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결심한 스티브. 시칠리아를 포기하면서 여행의 막바지에 아들을 합류시키며 챙기는 모습만으로도 그가 가족을 위한 노력을 할 것임을 보여준다. 항해하는 보트 위에 드러누워 부자가 나누는 대화에 대답은 없었다. 그의 아들이 집에 찾아오리란 보장도 없었으며, 롭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휴일(1953)>과 <노팅힐(1999)>이 과정은 유사하지만 그 엔딩이 전혀 다른 것처럼, 그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영화는 뚝 하고 끊어진다.
“내 의무를 깨닫지 못했다면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에요.”
오드리 햅번의 대사처럼 아직도 방황의 시기를 겪는 황혼 중에 일렁이는 바다 위로 비친 화사한 노을처럼 이 여행은 일렁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멈추고 되돌아오는 여행이 아닌 ‘앞으로의 여정’이 더욱 기대되는, 그 앞길을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여행에 대해 아름다운 낭만주의를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