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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기 <무제> 105 X 75 cm 종이에 영수증 펜 드로잉 2014 | ||
[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여기 식물 하나가 있다. 녹색을 띈 그것은 수많은 가시로 뒤덮여 있으며, 무더운 사막에서도 굳세게 자라는 강인한 생명체. 살기 위해 몸속에 물을 저장해야 되는 운명을 지녔지만, 가시를 자르면 하얀 피를 흘리는 이 식물은 다름 아닌 선인장이다.
이른 여름향기가 물씬 느껴졌던 5월의 어느 일요일. 선인장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 시리즈로 2인전을 열고 있는 김민기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명륜동에 위치한 갤러리 푸에스토를 찾아갔다. 조각을 전공한 김민기 작가는 예술이라는 도피처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가로서의 내적 갈등을 선인장이라는 형상에 담아냄으로써 ‘공존’하는 삶에 대해 긍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수히 많은 점, 원, 선으로 응집된 선인장 이미지는 종이 위에 그린 것과 영수증 위에 그린 것, 또 캔버스에 그린 것까지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특히 수년 간 수집된 영수증을 꼴라주 한 바탕 위에 그려져 있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영수증은 무엇일까? 선인장을 에워싼 영수증 속 바래진 무수한 글자와 숫자들은 이해 타산적이고 삭막하기까지 한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주는 듯했다. 그것은 모래바람이 휩쓸고 간 흔적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그대로지만 어딘가 모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막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선인장을 작가의 도플갱어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그려진다.
작품 속 선인장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사막이 아닌 ‘화분’ 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화분이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작가적 소명을 다하려는 투지를 함축하고 있다면 사막은 작가가 꿈꾸는 이상 세계인 것이다. 나는 김민기 작가의 선인장이 현실과 이상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은 투명한 자화상을 제시함과 동시에 작가 자신의 비전을 담은 시적 아이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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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전경 [사진제공 = Gallery Puesto(갤러리 푸에스토)] | ||
여고시절 선인장이 지닌 강렬한 메타포에 열광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당시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선인장처럼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있을 것 같다” 라고 했던 남자의 절절한 대사였다. 그 때부터 줄곧 나에게 선인장 이미지는 외강내유의 상징과도 같았다.
한옥을 개조한 고즈넉한 갤러리 카페에서 마주한 김민기 작가의 선인장은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며 귀 기울일 수 있었던 타자의 이야기였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대면하기 꺼려지는 이야기는 있다. 그것을 창작물이라는 예술 실천을 통해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일 것이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되묻고 싶다. 당신의 선인장은 무엇을 감추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