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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ST VIOLENT YEAR

   
▲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1981년 뉴욕, 재정 거품이 빠지고 정치 부패는 만연하고 범죄율이 최고이던 시기. 소위 ‘화이트 플라이트'(White Flight) 라고 불리우던 도심의 백인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신변보호를 위하여 교외로 서서히 이주하며 그 자리를 ​이민자 계층이 자신들이 신분상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고 들어와 채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다구니하듯 달려들던 때가 바로 1981년의 뉴욕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며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꾸는 사람들, 그 중의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아벨 모랄레스’ 도 있었다.

   
▲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의 주인공 ‘안나'(제시카 차스테인)과 ‘아벨'(오스카 아이삭)

오일 사업을 하는 ‘아벨 모랄레스'(오스카 아이삭 役)와 ‘안나 모랄레스'(제시카 차스테인 役) 부부. 서로에게 있어 부부이자 최고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한 그들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큰 부지를 사들이며 수순을 밟는데 어느날 그들의 오일 운반 트럭이 강도사건을 당하며 이들은 큰 위기를 맞는다. ‘아벨’은 성실히 일하던 자신의 운전수를 위로하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보려 하지만 유독 자신의 오일 트럭 강탈만 노리는 듯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손해는 극심하게 일어나 자금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연이은 오일 트럭 강탈로 인한 막대한 손실, 확장 부지 매입 후 남은 계약금, 자신의 사업을 추적하던 검사의 범법행위로 기소하겠다는 고지에 이어 자신의 경영난으로 인해 대출을 약속했던 은행의 ‘대출거절’까지. ‘아벨’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에 빠지게 되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누가 법을 지키면서 사업을 해? 그래가지고 돈을 벌 수 있겠어?

법을 지키면서 하는 게 오히려 멍청한거야.”​

​드라마나 현실에서 자주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자신이 물리지 않으려면 먼저 물어뜯거야 살아남는 현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착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으로 비춰지는게 현실이다. 특히 각박한 업계, 극 중에서는 ‘유(油)류 업계’ 에서는 더 그렇다. 극 중, ‘아벨’은 ‘합법적’인 사업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실리(實利)를 위해 교활한 술수를 부리며 이윤을 챙기는 다른 사업가들과 확연히 다르다. 늘 합법적인 절차를 지키면서 사업을 하기 위해 애쓰던 그의 모습은 그의 ‘도덕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누구나 흔들리는 때가 온다. 세상이 작정하고 자신을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듯한 때가 닥치면 그렇지 않겠는가? 이때 인간은 결정해야 한다. 자신이 여태까지 공들였던 것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놓아버리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돌아가는 현실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법칙을 따른다. 아벨은 자신이 여태껏 지켜왔던 ‘도덕성’을 버리고(Give) ‘업계의 돌아가는 현실’을 따를지(Take) 결정해야 한다.

   
▲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 ‘스틸컷

“뛰어 내리기 무서울 때 바로 그때가 뛰어내릴 때죠.

아니면 같은 곳에서 평생 썩든가.

그렇겐 못 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직원들을 가족처럼 살뜰히 챙기며 직원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처럼 챙겨왔던 인정미(人情美)가 넘쳤던 상사의 모습을 보였던 ‘아벨’. 그러나 누구든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내몰린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에 기댈 수 밖에 없듯 그도 선택을 한다.

평소 ‘합법적’인 일만 하며 바른 길만 택하던 남편 ‘아벨’의 모습을 지켜봐왔던 아내 ‘안나’는 그동안 남편 몰래 교묘하게 숨겨왔던 비밀 자금이 든 통장을 건넨다. 소위 ‘자금세탁’을 자신 몰래 행해왔던 ‘안나’와 그런 그녀를 눈감아줬던 변호사. 자신의 가장 측극이며 믿어왔던 그들의 모습에 처음에 분개하던 ‘아벨’은 곧 이것만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임을 직시하고 아내의 통장을 받는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속에 똬리를 트고 있던 양심을 바로 자신이 뭉개버리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누구나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모두 출발선에 선다. 그러나 최고(最高)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그 곳에 도달할때까지 가는 길은 이렇게 비열하고 비정할 수 있으며 우리가 비참하게 당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옥보다 더 지독할 수 있는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아벨’은 살아남기 위해선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사회에 사는 우리의 초상일 것이다. 극 중 그의 이름은 ‘아벨 모랄레스’ 이다. ‘아벨'(Abel). ‘아벨’이란 인물은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로 하느님에게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치고 총애를 받았던 ‘아벨’은 하느님에게 외면 당했던 친형 카인에게 질투심으로 인해 살해를 당한다. 만일 그가 ‘모랄레스’, 즉 ‘Moral + less’ (비도덕적이었다면) 했다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부족하여 제물을 바치기를 거절했다면 혹은 질투심에 찬 형을 알아보고 먼저 형을 살해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성경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을까.

   
▲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 의 ‘아벨’

​”​전 가장 옳은 길만 선택하며 살아왔습니다.

결과엔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죠.

어떤 길을 택하느냐 고민했을 뿐이지, 언제나 가장 옳은 길

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이게 그 길입니다.”

현실과 영화도 이제 습자지 한 장 차이인 듯한 현실에서 이 영화는 ‘선악'(善惡)이란 명백한 ‘흑백논리’와 같은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즉, 우리는 전날 부인의 그동안의 불법적인 ‘자금세탁’에 분개했으나 다음날 아침 일어나 면도를 하며 ‘그 돈을 쓰자’고 말했던 아벨처럼,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선악을 넘나드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 이야기는 극 중 ‘아벨’에게만 극한 되는 것이 아닌 ‘생존정글’과도 같은 현실을 사는 우리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룬 그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된 ‘확장 부지’에 서서 검사를 보며 말한다. “지금은 이게 옳은 길입이다.” 라고. 사회에서는 자신이 이룬 ‘결과’가 자신을 말해준다. ‘과정’은 묻지 않는다. 오로지 그가 이룬 업적이 그를 드높여주고 그를 지켜준다. 그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했고 결국, 그는 살아 남았다. ​그런 그에게 세상은 말한다. “그러면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만일 그가 끝까지 ‘합법성’만 고집한 채 사업을 버텼다면,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됐다면, 사회는 그에게 ‘그래도 당신은 법을 지키셨잖아요. 그럼 된거지요.’ 라고 말해줄 것인가? 아마 그에게 ‘융통성 없기는..’ 라며 혀를 끌끌 차며 조롱을 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현실과 타협한 그, ‘아벨’. 그에게 감히 돌을 던질 수 있는 자, 얼마나 될​ 것인가?

   
▲ 영화 ‘모스트 바이어런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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