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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함의 새삼스러움, <파리, 텍사스>

   
▲ <파리, 텍사스> 포스터 [출쳐=네이버영화]

[THE ARTIST 매거진=어한빛]  우리는, 어리석게도 함께 있을 때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잃은 후에, 누군가가 떠난 후에야 ‘함께’라는 소중함을 깨닫고 후회한다. (흔히들 떨어져 있을 때 소중함을 더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언제나 관계는, 완전한 것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것보다 불완전한 것을 견뎌냈을 때 더욱 견고해진다. 완전한 것만 경험하며 나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는, 그 불완전한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관계를 형성하는지,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는 동안,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이끌림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그 누군가는 아빠와 엄마일 것이다.

  영화는, 보통의 가족 영화가 함께하면서 사건이 생기고, 위기가 닥쳐와 이를 극복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언제부터 말을 안 해왔는지, 몇 년 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 모르는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튼분), 굉장히 예쁜 외모에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하는 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있는 제인(나스타샤 킨스키분), 엄마·아빠를 모두 잃고 트래비스의 남동생인 월트 부부에게 키워진 헌터(헌터 카슨분). 한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닮은 구석 하나 없는 이 세 명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묶이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다. 가족으로 함께 한 날보다, 떨어져서 각지의 삶을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이들이 서로의 영역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들보다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가 더 절절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아마, 우리 스스로 가족이라는 존재가 개인에게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월트가(딘 스톡웰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트래비스와 헌터의 사이를 위해, 예전에 모두 함께(트래비스 부부와 월트 부부) 다녀온 여행 영상을 틀어주는 순간부터 트래비스와 헌터의 사이는 변하기 시작한다. 영상속의 그들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똑 닮아있기 때문에, 트래비스·제인·헌터, 그들은 너무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 함께 걸어가는 트래비스와 헌터.

  이 후, 트래비스가 가사 도우미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보일까요” 라고 묻고, 도움을 받아  아버지처럼 보이기 위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름대로 아버지처럼 보이는 옷을 차려입고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헌터를 데리러간 트래비스. 둘은 걷는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다른 보도블록 위를 걷지만, 그들은 ‘함께 발맞춰’ 걷는다. (이전에 트래비스가 헌터를 데리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헌터는 트래비스를 못 본체 한다.) 한참을 걷다가 트래비스가 헌터 쪽으로 다가가, 그들이 서로의 옆에서 걷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내가 엄마가 된 냥 가슴 찡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영화는 20분 남짓 남았을 때, 이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떨어지게 되었는지 진실을 들려준다. 그리고 트래비스는 제인과 헌터의 만남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떠난다.(그 곳은 아마 파리, 텍사스일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함께가 아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있다. 절대 끊어낼 수도, 끊어질 수도 없는 실로 말이다. 그렇게, 결국 이들은 함께인 것이다.

   
▲ 오랜 시간 끝에 만난 헌터와 제인.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굳이 표현하기 싫을 만큼 그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 영화를 보고나면, 아마 우리는 고향에 계실 혹은 오늘 저녁 집에 가면 계실 우리의 부모님이 조금은 다르게 와 닿을 것이다. 한 가족, ‘엄마, 아빠, 나’라는 말의 새삼스러움이 뼛속 깊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엄마가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우리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될 것이다.

  조금이면 어떠하리, 알게 된다는 것 자체의 소중함을 간직한다면. 가정의 달인 5월, 꼭 다가오는 어버이날이 아니어도 좋으니 용기 내어 ‘말’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 (글이 아니라 말임을 명심하자.)   ‘사랑합니다, 엄마·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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