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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vianmaier.com | ||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모순적이다. 대담하다. 신비롭다. 유별나다. 생전에 비비안 마이어를 알았던 지인들이 그녀의 작품에 대해 하는 말들이다. 맑게 빛나는 진주와 같은 작품들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작은 경매장에 숨어있었고, 이 영화를 기획한 존 말루프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다. 이 우연한 발견이 이끌어가는 미스터리에 매료되어 영상을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예술가를 발굴하게 된 존 말루프는 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이런 황홀한 작품들을 찍을 수 있었으며, 왜 이 작품들을 세상에 보여주지 않았는지, 인생에 대한 단서라고는 무더기로 쌓여있던 박스 더미 속 영수증과 편지들이었기에 신비로움을 느낀다. 그녀를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영수증과 편지 속의 지인들을 찾아가고, 이 과정 속에서 그는 그녀의 여러 가지 면모를 발견한다. 프랑스식 억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적은 미국이었던 유모,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비비안’이라고 불리기도 하였고, ‘비브’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미스 마이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간혹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던 경우, ‘V.스미스’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편지와 영수증 속 그녀의 이름 철자는 매사 다른 형태였다. Meyer, Maier, Mayer… 왜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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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vianmaier.com | ||
비비안 마이어는 이름의 불명확함 만큼이나 성격 또한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한없이 아이들을 사랑하며 친절하고 밝은 사람이었다가도, 자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어 정신질환이 있다고 생각하던 지인들도 있었다. 그녀는 성큼 어떠한 사람의 공간 안으로 침입하여 융화하는 친화력을 가졌음에도, 혼자이며 외로운 사람이었다. 이는 그녀의 작품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거침없이 셔터를 누르다가도, 사건의 현장에서는 마치 타자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풍경에 녹여내는 듯 혹은 분리시키는 듯 셀카를 찍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녀의 사진 속에는 다양한 삶이 녹아있다. 기자와도 같은 성격의 사진들과 매사 심오하고 어두운 사건들의 기사를 오려 모아두던 저장강박을 가진 그녀는 자신만의 또렷한 사회적 의식을 지닌 여성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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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러한 그녀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사진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가 경험하는 간접적 자아와 세상에 대한 시선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작품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사진을 촬영한 이의 배경적 설명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존 말루프도 중간에 자신이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을 잠시 가진 적이 있다는 발언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유모 생활 이전의 모든 기록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에, 그 후의 상황만으로 추측하기에 분명 그녀는 어떠한 아픔을 경험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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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vianmaier.com | ||
남성에 대해 유독 극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그녀. 자신을 도우려던 남성이 다가오자 폭행을 가하여 다치게 하고도 할 정도로 그녀는 남성을 기피했다. 전혀 기록을 발견할 수 없는 그녀의 가족 또한 그녀에게 영향을 미친 부분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다만 알 수 있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도 사진 촬영을 했다는 것. 그녀의 어머니가 사진을 인화하던 사진관에 비비안 스스로 동업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본인이 작품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의외의 요소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하지 못하였던 것일까? 오직 그녀만이 알 것이다. 단지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보며, 삶 속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공간들을 마주하고,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그 감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경험할 뿐이다.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시선, 비극을 바라보게 하는 시선, 무엇보다 유모로서 아이들을 바라봤을 그녀의 시선에 담긴 아이들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면서 그녀가 살아왔던 삶보다도 인류 보편의 감정과 더불어 각 개개인의 감정을 동시에 바라보는 모순적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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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영화가 상당히 불편했다. 그녀의 삶을 통해 작품은 더욱 미스터리한 존재로 부각되고, 그로써 작품의 아우라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을 받지만, 그녀가 알리고 싶지 않았던 삶의 모습이 자꾸 거슬리게 된다. 저장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행태를 보아 사진을 찍는 것은 ‘작품’이지만, 그녀가 기록해야만 하는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작품들을 통해 기록하고, 신문을 켭켭이 쌓아 보관했듯이 인화하지 않은 사진들을 필름 채 박스에 넣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해서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이를 통해 의도한 바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고, 물처럼 온순하고 유하였지만, 동시에 불 같고 어두웠던 사람인 그녀를 알수록 작품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오히려 비비안 마이어의 경우는 그녀를 알면 알수록 작품은 더 알 수가 없는 듯한 애매한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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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가치는 바로 예술에 대한 열정과 더 좋은 예술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그 열정에 있다. 비비안 마이어를 알기에 앞서, 존 말루프는 이 대단한 예술 작품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사진은 이렇게 빛을 발하고 있는데 부족한 정보와 현재 미술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동향에 좋은 예술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의도이다. 그렇게 그의 노력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작품들은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많은 이들이 사진 앞에 서서 그 작품이 거는 말에 대답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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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보여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작품이 하고 있는 말을 듣고, 생각과 삶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그 예술은 단지 보여지는 것 이상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이 것은 곧 미래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명감이 존재하는 예술의 길목에서 이 작품은 여전히 베일로 존재한다. 비밀과 베일의 경계 속에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두 존재가 맞닿아 진동하는 그런 순간을 선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