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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_500일의 썸머

   
 

[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톰 핸슨, 그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믿으며 자랐다. 섬머 핀, 그녀는 그런 믿음 없이 자신의 흑발의 머리와 그것을 아무 고통 없이 잘라낼 수 있다는 사실만을 사랑했다. 그리고 1월 8일, 둘은 처음 만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카드제작회사에서.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남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톰 핸슨은 완벽히 자신의 상상 속에 살고 있다. 그것은 영화 초반 나레이션이 말하듯, ‘슬픈 영국 팝을 일찍 접한 것과 영화 <졸업>을 완전히 오해한 데서’ 기인했다. 마치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처럼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시간을 왔다갔다 교차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바로 그녀’가 썸머라는 사실을 알지만, 사실 처음부터 톰이 그녀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녀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 “짜증나, 왜 예쁜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 “어쨌든 괜찮아, 이런 바보짓할 필요도 없고. 그냥 편해, 괴롭지도 않고.”

톰은 처음에는 썸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정하고, 편견에 갇힌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그녀에게 관심이 생긴 이후 혹은 사랑에 빠진 다음에는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한국식 표현으로 참 ‘찌질한 남자’가 바로 톰 핸슨이다. 그는 자신이 아무런 욕망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감추려고 한다. 라캉 식으로 말하건대, 전형적인 강박증자에 속한다. 그는 ‘바로 그녀’에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내 목적이 달성되지 않기를 바라”
반면 썸머는 히스테리증자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가정 환경 탓일까? 부모님의 가정 파탄 이후 그녀는 사랑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나 보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이란 없다고 믿으며 만나는 남자와 하는 일련의 행동(?)들도 애인과의 사랑이 아닌, ‘친한 친구 간의 무엇’으로 생각한다.

   
▲ “나도 사람 사귀어본 적은 있지만 ‘사랑’해본 적은 없어요.”

그녀는 관계를 정립하기 싫어한다. 어쩌면 그런 점은 톰과도 닮았다. 물론 톰은 조금 다른 이유로(확실한 관계라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거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의 욕망을 달성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한다. ‘사랑’이라는 관념 혹은 욕망을 계속해서 지연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로서는 상당히 현명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 끝에 찾아오는 것, 혹은 결혼 끝에 찾아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별 혹은 이혼뿐이다. 부모님을 통해 결혼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 알고 있는 썸머는 톰을 만나기 이전에는 물론, 톰을 만나는 와중에도 자신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결론적으로, 톰이나 썸머나 둘 다 썩 좋은 사랑놀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톰은 썸머 자체를 사랑하기보단 ‘썸머’라는 인물이 갖고 있지 않은 매력-곧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사랑했다. 물론 썸머가 정말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톰이 상당한 환상을 가지고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변함없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상황을 두 개의 프레임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극적으로 표현했다. 썸머가 초대한 파티에 찾아간 톰은 어떻게든 그녀와 다시 엮여보리라,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상상 속에서 톰은 썸머와 단둘이 이야기하지만 현실의 썸머는 다른 남자와 이야기한다. 이것은 톰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 영화는 톰의 ‘기대’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편집하여 보여준다.

반면에 썸머는 사랑 자체를 끝없이 부정한다. 누가 봐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톰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하는 짓이 사랑임을 부정한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곧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 이후에는 슬픈 이별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고 이별은 이별이다. 그럼에도 썸머는 사랑=이별이라는 공식을 통해 톰과의 관계를 정립하기를 거부한다. 이상한 논리적 공식에 따라 살고 있는 썸머는 전형적인 히스테리증자다. 그녀 역시 (정확히 톰의 세계는 아니지만) 톰과 같은 이상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 <500일의 썸머>는 중간 중간 깔리는 BGM 을 통해 각 장면들의 주제를 드러낸다. 톰이 상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낄 때, 목소리는 노래한다. “I’m the hero of the story. Don’t need to be saved.” 역설적이게도, 톰은 상상계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낀다.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진짜 사랑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한 남자의 찌질한 일대기를 재미있게 소묘하고자 했던 걸까? 일부는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톰과 썸머가 변하는 부분이다. 톰은 썸머를 잃은 뒤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하다가 다시 사회로 나아간다. 이번에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던 일-카드제작대행-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건축-을 하러 말이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살던 톰은, 썸머를 만나고 상상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사회 속으로 뛰어든다. 극적인 성숙이 이루어진 것이다.

썸머 역시 변했다. 그녀는 마침내 결혼했다. 그토록 결혼이니 사랑이니를 싫어했던 그녀가 톰을 만나고 변한 것이다. 톰이 변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썸머를 만났을 때, 썸머는 말한다. “네가 옳았어, 내가 틀렸고.” 그녀 역시 ‘영원한 사랑’은 없을지 몰라도 ‘사랑’은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한 마디 말을 툭, 던진 뒤 썸머는 예전처럼 톰의 손을 슬며시 잡는다. 그러나 톰은 다만 놀랄 뿐, 예전처럼 상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 역시, 사랑은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믿기 시작했으므로. 

   
 
   
▲ “네가 옳았어. 내가 틀렸고.”

바로 이것이 사랑이 가진 묘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메세지처럼 ‘사랑은 있을지언정 영원한 사랑은 없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걸까? 이것이 바로 썸머가, 그리고 톰이 공통적으로 가진 의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하며, 바로 그 비영원성과 특별함 때문에 사랑을 하는 거라고. 톰이 건축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레이션은 말한다. “톰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전우주적 사건을 지구적 이벤트로 치부해버렸을 것이다.” 면접을 함께 보게 된 여성에게 톰이 인사하며 차나 마시자고 한다. 그녀는 선약이 있었지만, 취소하겠다며 대답한다. “I’m Autumn.”

   
▲ “Nice to meet you, I’m Autumn.”

여름은 가면 가을이 온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지만 그게 무슨 큰 대수랴. 에로스는 우리를 양껏 성숙시켜주고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갈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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