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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한번 더 해피엔딩>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영국배우 ‘휴 그랜트’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표작으로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네번의 장례식과 한번의 웨딩>, 스타와의 꿈만 같은 연애를 그린 <노팅 힐> 에 이어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까지 여심을 녹이는 로맨스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그인지라 이제 휴 그랜트하면 많은 여성팬들은 초콜렛처럼 달달한 미소를 풍기는 로맨틱한 영국신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포스터에서 보듯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감독과 함께 ‘한번 더 해피엔딩’ 이란 영화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주목할건 이번에는 그의 전작들과 느낌이 닮았지만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그의 달달한 필모그래피의 영화들이 ‘사랑’이란 케이크 위에 ‘행복’으로 데코를 얹은 느낌이라면 위 영화는 반대로 ‘행복’이란 케이크 위에 ‘사랑’으로 데코를 얹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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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한번 더 해피엔딩> 씬 | ||
15년 전, ‘잃어버린 낙원’ 이라는 시나리오로 히트를 쳤던, 소위 말하는 왕년에 잘나갔던, 시나리오작가 ‘키스 마이클스'(휴 그랜트 役)는 이제는 자신이 잘 나갔던 때를 말하려면 머릿속에서 케케묵은 15년전 얘기를 끄집어 내와야 하는 한참 한물이 간 작가이다. 어디를 가도 그가 듣는 말은 ‘오, 저 정말 작가님 팬이에요!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별로네요.’ 라는 얘기만 들으며 퇴짜 맞기 일쑤인 그는 말 그대로 ‘돈을 벌기 위해’ 빙엄턴이란 시골 마을에 대학교수로 가게 된다. 누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철학인 지론(知論)을 갖게 된다. 그의 것은 ‘글 쓰는 재능은 거의 하늘이 주는 선물과도 같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 그대로 ‘나 같은 사람은 되지만 당신(그의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과도 같은 사람들은 글쎄..’ 라는 생각을 갖고 수업하는 그. 그는 시골마을에 자신이 와 있다는 것과 앞으로 되도 않을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에 그는 몸서리를 치며 넌더리를 낸다.
우리 주위에서도 ‘내가 그래도 왕년에 말야~’ 혹은 ‘나도 한땐 잘나갔어~’란 소위 ‘과거형’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이런 말에는 ‘지금 내 현실은 시궁창 같으니 달콤했던 과거를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서 현실을 좀 잊어보겠다.’ 라는 의미가 다분히 담겨 있다. 자신은 현실이란 시간 속에 살면서도 자기가 이렇게 예전보다 추락하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과거에만 목매여 사는 것이다. 위 영화에서 ‘키스’도 그렇다. 현실이 시궁창 같다고 말하며 어떻게든 시나리오 작가 일을 맡아서 시골을 벗어나보려고 한다. 자기가 할 것은 되도 않을 시나리오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것이 아닌 또한번의 전성기를 가져다줄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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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한번 더 해피엔딩> 씬 | ||
자신만의 세계에서 도무지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던 그, ‘키스’. 그런 그가 조금씩 변화하게 된 것은 그는 바로 자신이 ‘될 수 없다’고 무시했던 학생들이 서서히 변화를 보이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퇴짜를 놨던 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을 보며 그들에게도 가능성이 있으며 자신 덕분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그들의 말에 뿌듯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15년 전의 수상소감을 계속 돌려 보며 왕년의 영광을 다시 누리고 싶어했던 그, ‘키스’. 그는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이고 자신이 그동안 앞을 보고 산 것이 아닌 뒤돌아보기만 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자신이 앞을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이제 자신이 내딛는 다음 발걸음은 그 전과 다르다. 회사가 자신을 선택해줘야 내딛을 수 있던 ‘수동적 발걸음’이 아닌 이제 자신이 이 학교에 머무르고 싶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란걸 알게 된 그가 내딛는 ‘능동적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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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번 더 해피엔딩> 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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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한번 더 해피엔딩> 씬 | ||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왕년에 잘 나갔던 시나리오 작가가 15년 후에 ‘퇴물’ 이 되어 시골 학교에서 애들이나 가르치고 있군.’ 이라고. 아마 그 자신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으로 자신을 가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발걸음이 소소해보이면 어떠한가? 자신의 선택이 자신을 행복으로 충만하게 하다면 된 것이 아닌가? 그는 더 이상은 남들의 존경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을 멋지게 연설하는 ‘외적’인 성공은 이룰 수 없을지 몰라도 자신이 시골 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다음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소소한 행복’이라고 하찮아 보이는가? 작은 발걸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소소하여도 행복은 행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