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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게 묻다_DELUGE: 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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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LUGE: 물의 기억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꿈을 꾸었다/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벗이여, 삶과 죽음이 우리 뒤에 있다.’ 호주의 대표시인 주디스 라이트Judith Wright의 시, <홍수>다. 흐르는 물살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그의 시가 왠지 이해된다. 속절없이 흐르는 물결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보인다. 아니면, 모든 걸 알고 있는 걸지도.

물은 모른다

서울문화재단은 지난 4월,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는 특별기획으로 <DELUGE: 물의 기억> 공연을 준비했다. 배우들은 한 마디의 언어도 내뱉지 않는다. 언어는 무대의 어둠 속에 감춰지고 무대 위에는 배우들의 하얀 신체만이 남겨져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몸짓 언어는 예사롭지 않다.

첫 장면에 배우들은 서로 모인다. 그 중 몇몇은 갑자기 입을 벌리며 “하아!”하고 외친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들의 몸짓은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을 생각나게 하지만 동시에 물도 생각나게 한다. 하나로 모이지만 마치 따로따로 흘러넘치는, 물. 배우들의 몸짓은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물을 표현하는 것인지, 사람의 표현하는 것인지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참으로 모호한 물이다.

이러한 애매함은 언어를 닮았다. 우리는 언어 덕분에 이러저러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언어의 장벽에 갇혀 그 이상의 생각을 하기 힘들다. 언어는 우리에게 관념의 자유를 허락하지만 동시에 관념을 제한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우울해.”, “기뻐”, “슬퍼.” 등의 감정표현을 하지만 동시에 “나도 내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연이 내건 슬로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내줄 수 있을까?’ 갑작스런 이별에 닥치는 슬픔과 괴로움은 언어 이상의 영역에 속한다. 이런 질문을 갑자기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바로 대답하기 힘들 것이고, 오랫동안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답을 알 수 없다가 답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꿈같은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드므로.

그렇다면 물은 이러한 비극을 알까? 아마 물은 모를 것이다. 그 슬픔은 안다면야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다. 물은 모든 것을 앗아가지만, 순진무구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본다. “내가 뭘 가져갔는데?” 공연은 계속해서 물의 순진함을 보여준다. 이쪽 무대에서 저쪽 무대로 뛰어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에는 법칙도 규칙도 없다. 마음대로 뛰어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되돌아온다. 무대 한가운데에 배우들이 서서 마치 굿을 하듯 몸을 계속 떠는 장면도 그러하다. 뒤흔듦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다. 무대 한가운데로 다같이 손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걸어나오는 장면은 어떤가. 그들의 외침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정의내릴 수 없는 아득함이 느껴질 뿐.

   
▲ 공연의 한 장면. 신체를 이용한 ‘물’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물은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물은 알고 있다. 자신이 한 행동은 몰라도,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지 말이다. 연출가인 제레미 나이텍은 노컷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예술가가 하는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즉시 마련해주는 거에요.”

물의 치유력은, 나이텍이 공연의 제목을 <물의 기억>이라 정한 것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물은 순진하게도 모든 비극의 주범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슬픔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슬플 때 눈물이 나오겠는가. 역설적이게도, 감정의 정화는 물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물의 치유력을 떠올리며 공연을 다시 보면 무대가 새롭게 보인다.

   
▲ 연출가인 제레미 나이덱.

초록색 불빛 파도 아래서 배우들이 하나씩 하나씩 헤엄치며 사라진다. 언듯 보면 물 속으로 빠지는 듯한 장면이다. 하지만 떠나가는 배우들은 망설이며 갈듯말듯 하다가 자신감 있게 빠져든다. 물과 뭍의 경계에서 아른거리는 배우들의 모습은,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떠올리게 한다. ‘삶과 죽음이 여기 있으매 (…) 미타찰에서 만나볼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어쩌면 물속 너머의 세계는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또다른 삶의 세계가 아닐지. 헛된 기대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물-혹은 배우-의 움직임은 마치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만 같다.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은지 1년이 지났다. 사랑하는 이들을 삼켜버린 저 바닷물은 자신이 저지른 비극을 알고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파도치는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물은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만져준다. 언제나처럼 거기에 있을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슬펐던 감정들마저 잃어버릴 터이다. 그러나 물은 언제까지고 거기에 있다.

I dreamed we had lost much.

I do not remember what we have lost.

My friend, death and birth are behind us.

Judith Wright(19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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