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라는 고도를 배경으로 나는 낭만적인 서사시를 쓰고 싶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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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 베키오 다리 위에서 | ||
피렌체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었다. 딱 그 하루만이 내게 허락된 피렌체에서의 시간이었다. 아직 타르같은 어둠이 거치지 않은 도시로 나선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 이곳은 현재가 아닌 과거를 사는 곳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그렇기에 딱히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염없이 걷기만 해도 잠시 시간을 거스를 수 있을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실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니 그 모든 생각이라는 것은 사실 단 한가지의 감정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어쩐지 마주칠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기대감이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작위적 기시감이다. 피렌체라는 고도를 배경으로 나는 낭만적인 서사시를 쓰고 싶었을지 모른다. 만듦과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노골적인 사랑의 비극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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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중에서 | ||
유럽 여행에서 테마로 삼은 한 가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피렌체는 분명 가장 가까운 시기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의 연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준세이와 아오이는 헤어진 뒤 십년 후 피렌체의 두오모 큐폴라에서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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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 베키오 다리로 향하며 | ||
‘재회한다.’ 피렌체의 미로 같은 돌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재회한다.’ 기어코 두오모에 도착했을 때 아직 태양은 짙푸른 하늘에 감싸여 있었다. 주위를 휘 둘러보지만 아직 개관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계속 걷기 시작한다. 이곳저곳을 걸으면서 이 아름다운 이 도시의 공기는 생각보다 상쾌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어지는 돌길을 계속 걷다보니 베키오 다리가 보이고 어느덧 세상이 밝아져 있음을 깨닫는다.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밝아오자 서서히 도시의 윤곽이 드러난다. 베키오 다리에 다다르며 아름다운 건물들과 새파란 하늘, 그리고 어느새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다시 길을 돌려 이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두오모를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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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 대성당 | ||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순간은 절정이다. 어딘가를 오른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언제나 평지의 산책만 즐겨온 나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상황에는 힘들고 피로할지 모르는 법이다. 한걸음 한걸음 꼼꼼하게 밟아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길고 좁은 오르막 터널의 끄트머리에 놀라운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만약 오르지 않았다면 이러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빛이 들어오는 출구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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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 두오모 위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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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 두오모 위에서 | ||
피렌체를 떠나며 짧은 여정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짧았던 시간은 도리어 강렬하고 오랜 잔상으로 남았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천천히 피렌체의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머리칼만큼 내 마음은 떨려왔다. 떨려오는 마음만큼 가슴이 저며왔지만 결코 그것은 슬픈 사랑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가슴 속에 담고 또 뭍어야 할 아름다운 시 한편이었다. 기차는 미끄러져 간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바램이 있다면 언제가는 누군가와 함께 두오모에 올라가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