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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일민미술관 홈페이지 ilmin.org | ||
[디아티스트매거진=김명진] ‘우주생활’이라는 전시 제목은 그 내용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 과학에 대한 전시인가, 예술 전시인가? ‘NASA 기록 이미지들’이라는 부제를 발견하고 나서는 ‘아, 나사의 우주 탐사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생각했다. 과연 전시장 안에는 우주선에서 촬영한 달이나 토성의 위성 사진들, 나사의 여러 기구와 실험에 대한 수많은 기록 사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공간은 단순한 과학 박물관이 아니었다. 1층 입구에는 난데없이, 그러나 자연스럽게 회화 작품 하나가 걸려 있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2층과 3층에서는 본격적인 예술 작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회화, 사진, 그리고 설치 작품까지 나사의 기록 사진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장면은 국내 전시에서는 꽤 낯선 풍경이었고, 그래서 신선했다. 이 어우러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우주’라는 하나의 키워드 덕분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주생활>은 기록 전시인 동시에 미술 전시다. 한편에는 우주에 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록들이, 다른 한편에는 우주에 관한 여러 예술가의 주관적인 해석들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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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아람, 운석들, 3d프린트, 가변크기, 2015, 사진출처: 일민미술관 홈페이지 limin.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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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고 넘길 수 없는,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
<우주생활>에 전시된 예술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한국 작가의 작품이다. 미국에서 온 나사의 기록 사진과 한국의 미술 작품들은 재미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김홍석 작가의 설치 작품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재미있었다’. 불규칙적으로 구겨진 종이 같은 그 작품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진공 상태나 우주가 점점 확장된다는 이론, 그리고 불규칙적인 폭발 같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느껴졌다. 박아람 작가의 3D 프린트 작업인 [운석들]은, 우주적인 컬러 감각으로 3층 전시장의 분위기를 좌우할 정도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불규칙적이고 다양한, 작가가 상상한 운석들의 형태가 강렬한 색감의 판 위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우주의 일부를 보는 듯했다.
이와 같이 필자가 작품들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시장의 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 설명’이 이곳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즉 내 앞에 있는 기록사진이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으면 반드시 전시 팜플렛을 찾아 봐야 했다. 손에 든 팜플렛을 활용하지 않고는 작품의 제목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내 옆에서 전시를 관람하던 누군가는 “바로 옆에 설명이 있으면 보기에 편할 텐데”라며 작은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미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벽이 훨씬 좋았다. 게다가 나사의 기록 사진들에 대한 설명문은 벽에 적혀 있기에는 너무 길고, 상세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러 면에서, 이 전시는 관람자의 성의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전시 팜플렛에 기재된 나사 기록 사진에 대한 설명은 자세하고 친절하지만, 우주나 과학에 대해 무지하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내용들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우주 비행 계획서(flight plan)’에는 우주에서의 통신 기기 사용법이나 기계의 회로도, 상세한 이륙 과정과 같은 복잡한 내용이 가득했다. 이와 같이 우주에 관한 과학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반면에,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회화, 설치, 사진작품의 경우 작품의 제목 외에는 어떤 설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설명은 철저히 하되, 예술에 대한 해설은 자제하고 관람자들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작품들은 대부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워서, 한 줄의 해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나 자신이 게으른 관람자로서의 자세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늘 편안하게 예술작품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을 읽으며, 그것을 마땅한 진리라 여기고 살아왔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생각을 잠시 내려놓기 바란다. 예술작품 해설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이곳은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찾아가는 묘미가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작품 해설에 의존하는 대신, 작품 그 자체를 바라볼 때 <우주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미술 전시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우주란 무엇이었나, 그리고 실제로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생활이란 우주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우주시대에 맞는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기획자인 이영준 씨는 전시의 타이틀인 ‘우주생활’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획자의 의도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과 우주, 우주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로 세우려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지금까지 우리에게 ‘우주’란 무엇이었을까?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넓고 아름다운 곳, 지구 밖의 초월적인 공간,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거대한 곳. 우주란 너무 거대해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동경했던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기획자의 해설에 따르면, 진정한 우주생활은 ‘지구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들도 우주적 현상과 관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발 붙이고 살고 있는 이 곳 역시 우주의 일부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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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우주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두 영화, 그래비티(좌)와 인터스텔라(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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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자들은 전시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우주 개발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우주에 접근한다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준비 과정을 동반하는가, 그리고 우주 시대를 산다는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 <우주생활>에 제시된 우주 상식들은 과학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며,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좀 어렵더라도 열심히 이해해보려고 애쓰기를 추천하고 싶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열풍을 일으켰던 우주 영화들,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비티]는 이전까지의 우주 영화와 달리 현실적인 우주인의 관점에서 접근한 재난 영화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우주를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는 단순한 공상 영화가 아닌 최신 물리학을 반영한 과학 영화이기도 했고, 관객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만 했다. 이와 같이 이 전시도 관객에게 머리를 쓰기를 요구한다. <우주생활> 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걸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분명한 일부분인 우주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스스로 따져보고 이해해 보자.’ 지구생활에만 머무르기보다 우주생활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비록 인간인 우리가 우주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우주 개발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까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대처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작가보다 기획자가 먼저 보이는 전시
총평하자면, <우주생활> 전은 우리가 흔히 보아 왔던 작가 중심의 전시가 아닌, 기획자가 주체인 전시다. 작품 옆에 딸린 설명도 없이, 객관적인 기록 사진들과 다양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한 데 모아둔 이 공간에서 기획자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기획 전시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전시를 볼 때는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의 큰 그림을 보며 기획자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느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우주 시대에 맞는 감각’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갖춰나가야 할 것인지 조금은 감이 오기 시작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