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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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들과 함께 멜번 근교의 ‘힐스빌 보호구역’을 다녀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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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서 5분거리의 Frankston Beach 언제나 멋진 노을이 진다. 여름이면 반나체의 섹시한 오빠들은 덤이다. | ||
나는 호주 빅토리아 주에 위치한 멜버른에서 트레인으로 한시간 가량 떨어진 프랭크스톤에서 지냈다. 아름답고 유유자적 거닐 수 있는 바닷가는 집에서 오분도 채 걸리지 않는 언덕 아래에 있었고 큰 쇼핑센터와 자전거로 쉽게 갈 수 있는 모닝턴이 가까이 있어서 주말에 시티를 나가서 시간을 보내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여유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일을 했던 나는 매일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것에 즐거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시간이없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프랭크스톤은 나에겐 그야말로 유토피아, 지상낙원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인의 소개로 양도받은 생소한 직업인 ‘오페어’ 일자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어차피 집안일이야 하던것이고 아이들 돌보는 일은 그닥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은 없었으나 숙식제공에 용돈까지 준다는데 못 할일이 없다 싶었다. 실제로 여동생과의 나이차이가 6살이 나서인지 늘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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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좋은날 뒷뜰에 나와 간식으로 과일 샐러드를 먹었다. 해가 뜨거운 호주는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 그리고 선글라스가 필수 아이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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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오는 수 많은 한국인들 중 직업을 구하지 못해 한인식당이나 마트일을 전전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 여자라면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일인것같다.(물론 남자 오페어를 원하는 가정도 많다) 일단 오페어를 원하는 가정에서는 소위 ‘콧대높은’ 유러피안들 보다 자칫 소심하거나 내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아시안들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이기적이지 않고 다정다감하며 항상 남을 배려한다는 기본 매너가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만하게 볼 일은 절대 아니다. 가족들을 선택함에 있어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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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들이 제일 좋아했던 한국음식. 감자볶음, 시금치무침, 다양한 전 종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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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의 호주 엄마아빠가 나를 좋아했던 이유는 나는 조리를 전공한 전직 수쉐프 출신이었고 기본적인 한국 음식들을 다 손쉽게 만들 줄 알았다. 호주 엄마아빠는 다른 많은 호주 가정들이 그러하듯 토스트나 소세지, 초콜렛, 비스킷 등을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제한시키며 채식위주와 적정량의 고기 그리고 특별한날만 주어지는 오가닉 쿠키 정도가 다였다. 그런 부분에서 오페어의 입맛도 고려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나는 우리집 둘째 꼬맹이 리암과 마찬가지로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어서 우유 및 유제품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단음식도 입에 잘 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간단한 한국말을 가르치는건 나와 호주 엄마아빠에겐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내가 그들의 언어를 배울때마다 아이들도 나에게 한국어로 어떻게 말 하는지 물었다. 한번은 한국에 있는 엄마가 소포로 가브리엘의 한복과 리암의 태권도복을 보내주셨다. 그것들을 입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니 호주 엄마아빠는 물론 우리 엄마도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며 영상을 수십번 돌려보곤 했다. 우리 엄마는 내심 딸들이 얼른 결혼해서 손주를 안겨주길 바라시는듯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게 ‘you are part of us’라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며 나는 그들의 공동체 안에 속해있다는 안정감과 신뢰를 얻었다. 사람이 인간관계와 사회활동을 통해 얻는것 중 신뢰이상의 것이 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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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브리엘이 그리고, 말하고, 아빠가 받아적은 내 생일편지. | ||
리지와 브랜트는 항상 내게 말했다. ‘너로인해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졌어. 빨래접는 방법같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이 하나씩 바뀌고 있어. 그만큼 우리는 너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다는거야’ 그렇게 말 하고는 매일매일 나를 숨도 못 쉴 만큼 꼭 끌어 안아주었다. 오페어를 둔 그 어떤 가정보다도 우리는 더 많은 키스와 포옹을 서로에게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 수십번도 더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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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브리엘 어린이집 가기전. 분필로 집 벽에 그림을 알록달록 그렸다. 리지는 사랑스럽다며 좋아했고 브랜트는 집이 엉망이 되었다며 슬퍼했다. 결국엔 내가 지웠고 가브리엘은 울었다. 사실 이것때문에 리지와 브랜트가 다투기도 했다. 하하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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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1월. 짧은 휴가를 내어 가족들을 보러 호주에 다녀왔다. 너무 반갑게 맞아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 ||
내게 프랭크스톤에서의 시간은 무엇보다도 값지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으며, 내 결혼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내 이야기를 하며 나와의 순간을 추억한다.
내게는 마음으로 연이 닿은 또 하나의 가족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