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정은정] 파리가 꽃의 도시로 불린다면 런던은 안개의 도시이다.
파리가 예술, 패션의 중심지라는 것에서 비유되는 별명인 반면, 런던을 안개의 도시로 부르는 것은 정말로 안개(Fog)가 많기 때문이다.
런던에 안개가 많은 것은 영국의 먼 바다를 흐르는 해류 때문으로 매연과 안개가 결합되어 공해의 일종인 스모그(Smoke+Fog)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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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ndon Fog | http://imgrcad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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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의 소설 속 주인공 셜록홈즈는 안개 낀 영국의 날씨를 “마치 우유를 쏟아 부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영국인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안개는 런던의 명물로, 이처럼 영화, 소설, 회화 등 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지만 특히 화가들에게 화폭에 그려내는 소재로 사랑받은 것 같다.
영국의 안개를 매개로 하여 영국, 미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 명의 화가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 제임스 휘슬러, 클로드 모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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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너 作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1838 | wikimedia commons | ||
“터너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영국인들은 진정한 안개를 알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영국의 국민화가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는 비와 안개가 많은 영국의 분위기, 빛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람과 공기마저 캔버스에 담아내며 훗날 인상주의와 모더니즘,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놓은 천재화가다.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고 27세에 왕립미술원의 정회원이 됐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터너는 일생동안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며 바다와 강에 대한 풍경화, 여러 곳의 풍습과 풍경을 주로 그렸으며, 빛과 색채의 조화를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다. 많은 대표작이 있지만 풍경의 일체를 빛의 묘사에 집중시켜 빛 속에 녹여낸 ‘전함 테메레르호’, ‘안개 속의 해돋이’ 등이 유명하다. 개인적으로는 퇴역하는 범선을 젊은 증기선이 인도하는 황혼의 빛의 표현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가 인상 깊다.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된 이 그림 앞에 서 있자니 터너가 왜 ‘빛의 로맨티스트’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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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슬러 作 <녹턴 : 배터시 강> 1878 | ||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계 미국 출신의 화가 휘슬러는 런던의 밤 풍경을 주제로 한 그림들과 진보적인 양식으로 그린 인상적인 전신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휘슬러는 전쟁 중이던 어느 해 칠레를 여행하고 나서 영국으로 돌아와 밤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직접 목격한 풍경을 기억에 의존해 완성하려고 노력했던 휘슬러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집중하기보다는 해안선이나 하늘빛 또는 물색에 비중을 두어 완전히 주관적인 런던의 모습을 창출해냈다. 템스 강변의 저녁을 그린 ‘푸른색과 금색의 야상곡: 낡은 배터시 다리’는 ‘야상곡’ 시리즈의 대표작이다. 그의 그림은 구성상의 요소를 추상화하면서 주제성을 배제하는 과정이 음악과 통하는 점이 많았다. 작품의 부제로 ‘심포니’, ‘야상곡’ 등과 같은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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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네 作 <런던, 안개 속에 비치는 햇살 아래 의회당> 1904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 ||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한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런던, 안개 속 햇살이 비치는 의회당’ 등 런던 연작을 통해 안개 낀 런던의 장면들을 매우 인상 깊게 그려냈다. “날마다 런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구나”라고 블랑슈에게 편지를 쓸 만큼, 그는 런던의 풍경에 매료됐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한 붓터치와 파스텔 톤의 색감이 다소 몽환적인 느낌을 주며 우리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인상파의 전형적인 작품 경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대적으로 보면 터너가 가장 앞서고, 모네와 휘슬러는 동시대를 살며 교류도 하였다. 각 나라에서 세계 미술사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 세 사람이 반한 런던의 안개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심히 보아왔던 런던의 일상적인 안개에 특별함을 더해 안개의 숨겨진 면목을 이끌어 낸 이들 세 사람의 안목에 다시 한 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