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최보영]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질문을 던져봤을 것이다. 그리고 들어본 경험은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 질문의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모르고 산다. 그러나 경쟁으로 뒤덮여진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대학입시, 취업, 결혼, 자식교육으로 이어진 경쟁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 경쟁은 평가를 전제로 한다. 나의 다양한 모습들이 단 하나의 기준에 의해서 틀에 맞춰지고 타인의 눈에 의해 판단되는 과정 위에서 경쟁은 이뤄진다. 정해진 인생의 틀에서 늘 평가받는 우리들은 자칫 남들의 평가가, 그 경쟁 속 자신의 위치가 바로 자신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기에 결국은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부닥치게 되어버린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져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거울, 《가톨릭 청년》, 1934. 10
시인 이상의 시 <거울>은 1930년대에 발표된 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에서 화자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거울 속 나는 말을 못 알아듣고, 악수를 받을 줄 모르고, 만질 수도 없다. 나임에도 나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화자는 내가 몰랐던 다른 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화자는 거울 속의 내가 자신과 퍽 닮은 모습을 보며 나의 다른 모습을 더욱 알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결국 거울 속 다른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섭섭해 하며 시는 끝난다. 이상의 시를 통해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거울’이라는 도구를 이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져보고 내 표정을 살펴보면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지 깨닫기엔 내가 지나쳤던 내 모습이 너무나 많아서 이상의 시 속 화자처럼 나와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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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 태양의 도시Ⅱ, 2014, 국립현대미술관 | ||
3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되었던, 대형설치미술작가 이불의 작품 <태양의 도시Ⅱ>는 ‘거울’을 도구가 아닌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이런 거울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태양의 도시Ⅱ>는 길이 33미터 폭 18미터 높이 7미터의 엄청난 규모로 전시장 전체가 곧 하나의 작품이다. 관람객은 사진을 찍기 위해 설치된 작품 밖 가이드라인에서 처음으로 이 공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방의 벽과 바닥에 덮여있는 거울과 반사되는 빛이 주는 시각적 충격에 저절로 감탄을 내뱉게 된다. 그리고 작품 밖에서 작품 안으로, 거울로 가득 찬 이 공간으로 들어서게 되면 잠시 멍하게 서있게 된다. 바닥을 덮고 있는 거울의 파편들은 극지방의 눈 같기도 하고 미로 같기도 하다. 천천히 작품을 따라 걷다보면 만나는 우측 가장자리의 조명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잠시 멍하게 있게 되는 이유는 바닥의 거울도, 조명도 아닌 끝없는 거울에 반사되는 수많은 내가 제일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벽의 거울은 칸이 나눠져 있고 바닥의 거울은 파편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커다란 통유리에 단 하나만 비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거울에 조각조각 나뉘어 비친다. 분명 나임에도 약간의 수증기와 균등하지 않은 조명은 그 많은 거울의 나가 모두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커다랗고 고요한 공간에서 수많은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 관람객은 내가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나의 많은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은 이상의 <거울>처럼 단지 낯설게만 보고 거리를 느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많은 나 중에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물어 보게 만든다. 내가 지나쳤던 외로운 나를 위로하고 행복했던 나를 떠올리며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어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이상의 시와 이불의 작품은 거울을 보라고 말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봤을 때 우리는 조금이나마 해답에 가까이 갈 수 있고, 경쟁 속에서도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