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디아티스트

표현주의 건축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현대 도시 공간

독일 표현주의의 예술적 개념

[디자인=디아티스트매거진] 20세기 초 독일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던 표현주의는 세계의 표면적인 현상을 중요하게 다루는 인상파에 대한 반동으로서 기만적인 표면적 자극을 묘사하기를 거부하였다. 또한 인간의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감동을 예술로써 표현하려 했는데, 이러한 것은 종교적인 황홀경으로서 또는 내부적인 사회질서에 대한 깊은 정신적인 관심과 감동적인 환상으로서 미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즉, 당대 예술가들의 시선은 표면으로부터 내면으로,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정신으로 향하였다. 표현주의자들은 그들의 감정표현을 통하여 일반적인 규범을 상회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상황을 묘사했고, 불만, 갈망, 회의, 공포, 파괴 등의 개념을 암울하고 신경질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의 시각적인 언어는 강렬하지만 단절되지 않은 색채가 집중적으로 사용된 것이었으며 드라마틱한 붓놀림은 표현을 고조시키는 변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표현주의의 특성은 다양한 양식의 표현 형태로 포괄되는데, 이는 표현주의자들이 하나의 폐쇄된 형식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표현주의 건축은 표현주의 미술의 2차원적 특성과 같은 선상에 있으나 ‘건축’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특성을 3차원적 개념으로 들여와야 한다. 먼저 회화에서의 선의 강조는 활동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건축디자인에서는 자유로운 곡선 및 방향성이 있는 사선의 도입으로 적용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단순화, 과장, 변형, 분해에 의한 형태 왜곡은 접기, 비틀기, 잘라내기, 겹치기 등에 의한 형태 변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세 번째로 중첩이라는 회화적 특성은 건축의 해체적 구성과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대비를 통한 변화는 재료의 대비로 나타날 수 있다. 구체적인 세부기준은 건축가에 의하여 변화될 수 있으나, 이와 같은 조형특성의 객관적 기준은 건축 전반에 걸친 하나의 원리로 작용한다.

표현주의적 관점의 세계 도시 공간을 찾아서

  아래 네 곳의 도시 공간은 현대 건축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표현주의적 특성과 시각적 긴장을 통해 현대인의 삶 속에도 표현주의 경향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향성이 강한 사선의 도입, 기울기에 의한 왜곡된 형상, 선과 면의 중첩, 접기 등 형태 변형의 건축 기법을 통해 비정형적인 공간이 생성되는 것이 다섯 도시 공간들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이와 같은 표현의 방법은 인간에게 시각적 및 심리적 감동과 다양한 체험을 주어 획일적인 도시환경의 활력소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1) UFA 시네마 센터(독일, 1998)

   
▲ UFA Cinema Center, Germany

  건축가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가득한 이 건축물은 건축가그룹 쿱 힘멜브라우의 영감에 의한 스케치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형태의 우연성이 드러난다. 무의식적인 심상을 그려낸 최초의 드로잉은 거의 그대로 하나의 건축물로 구현되었고, 단편적인 요소가 합쳐져 건축물 전체를 이루면서 이 건축물의 콜라주 효과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미 만들어진 전통을 포기하고 일련의 새로운 규칙 속의 건축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다방면의 축을 중첩하였다. 뿐만 아니라 축의 중첩을 통해 공간의 다원성을 추구하였으며, 모서리를 파괴함으로써 공간의 위계성을 탈피하였다. 벽, 바닥, 천장 등의 개념이 없다는 것도 이 공간의 큰 특징인데,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비정형적 형태를 유지하며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비로는 콘크리트 박스와 수정체 부분이 있다. 규칙적인 체계의 콘크리트 박스와 대조적으로 수정체 부분은 투명하며 상승적인 운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즉, 두 개의 이질적인 형태 요소가 함께 존재함으로써 건물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형태에 도입된 자유로운 사선의 표현, 그리고 기울기의 변화에 의한 역동성이 표현주의의 왜곡되고 과감한 표현성을 표방하고 있다.

2) 라비예뜨 공원(프랑스, 1991)

   
▲ La Villette, France

  라비예뜨 공원은 기존의 전원풍 공원 전통에 반기를 들고 도시문화와 소통하는 새로운 근린공원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도시의 빈자리에 자연을 채워넣는 것이 아닌, 개별적인 문화적 경관으로서 지어졌다는 점 또한 이 공간이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문화적 요소와 과학기술적 요소가 합쳐진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는 이 공원을 기존의 건축 작품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이벤트 공간으로 분류하고, 공원 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고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도록 만들었다. 점, 선, 면으로 대표되는 세 개의 서로 다른 부분들은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각자의 역할을 다한다. 먼저 점의 체계인 폴리는 공간을 활성화시키는 요소로서 이벤트의 중심이 되고, 선의 체계인 산책로는 움직임의 특성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면의 체계인 다양한 주제공원은 놀이, 운동, 시장 등의 기능을 하며 복합적인 공간의 특성을 지닌다. 결국 이 공원은 공원의 독립적인 체계가 대지 위에서 중첩됨으로써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에서 벗어나 시민들 모두가 상호 작용하는 장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일이 벌어져 다른 공원보다 훨씬 역동적인 공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3) 비트라 소방서(독일, 1993)

   
▲ Vitra Fire Station, Germany

  최근 개장한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축가이기도 한 자하 하디드는 비트라 소방서를 설계하며 ‘불확실성의 시대에 건축은 건축가의 반성과 연구, 상상, 또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 모더니티를 다시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건축은 여타 건축가보다 실험적이며, 현실적이지 않지만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사물을 시각과 공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본 듯한 독특한 관점에서 처리하는데, 이와 같은 특징은 구성주의 화가인 말레비치의 회화를 3차원의 언어로 표현하고 건축으로 재구조화했다는 점에서 온 것이다. 비트라 소방서 또한 기존의 상식과 다른 추상적 경향을 통해 시각적인 긴장감과 경외심, 더 나아가 표현주의적인 강렬함을 불어넣는다.
  비트라 소방서는 고립된 구조체가 아닌 전체 대지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연속적인 동선을 위해 부지는 좁고 길며, 건물의 전체적 구성은 중첩 및 연결의 기법이 사용되어 방향성이 강한 긴장감을 가진다. 이 공간은 선과 면으로 분해되는데, 이는 추상 조각의 조합과 같은 느낌을 주어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와도 연결된다. 이 외에도 확장 및 압축된 공간의 구성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극적 변화를 이끌어내며, 전반적으로 방향감, 속도감, 운동감 등이 공간 전체에 깔리게 된다. 이와 같이 비트라 소방서에서 나타난 역동적인 표현성은 결국 표현주의 회화의 형태 표현 방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며, 관찰자 또한 표현주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새롭고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긴밀한 연결성을 가진다.

4) 요코하마 항만터미널(일본, 2002)

   
▲ Yokohama International Airport, Japan

  복합적이고 유동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 요코하마 항만터미널은 이질적인 세 가지의 시설들을 포함한다. 교통시설인 여객터미널, 도시 공공시설인 음식점, 상점, 회의시설 등과 거대한 정원으로 이루어진 이 건축물은 도시의 연장선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종이접기 방식으로 지어졌다. 종이접기 방식이란 지표면을 접고 갈라내어 그 자체를 구조화 및 형태화시키는 건축 방식인데, 그 결과 4개의 판이 접혀지고 갈라지면서 이음새 없이도 연결되는 형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밀접한 공간은 외부의 연속체가 되었고, 모든 공간이 연결되고 열려있게 되었기 때문에 여객의 양에 따라 공간을 가변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실용성 또한 생겼다. 이에 더해 건물의 외부공간인 지붕의 지형적 형태 덕에 보행자들은 지금까지의 건물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경험을 하게 되며, 요코하마 항만터미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도시의 연장선으로서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도시 속의 슬픔

  UFA 시네마 센터, 라비예뜨 공원, 비트라 소방서, 요코하마 항만터미널 모두 각자의 매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표현주의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을뿐더러, 그 가치를 통해 도시 속의 건축물이 아닌 도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쟁이라는 배경에서 태어났던 표현주의 예술은 특이하게도 전쟁과 거리가 먼 현대사회에서 또한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다. 어떤 연유로 표현주의적 가치가 단순한 도시 건축의 사조를 넘어 현대 사회 도시 계획 및 도시 건축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병적인 모순에 대한 비판,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반발, 감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모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표현주의의 정신을 따르게 된 것이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시기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