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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마윤의 묘 주변 | ||
일반적으로 인도에 들어가는 관문은 크게 두 군데로 델리와 뭄바이(구 봄베이)가 있다. 만약 경유 노선을 이용한다면 캘커타와 첸나이 등이 있지만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남부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첸나이와 뭄바이로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첫 여행에서 북부의 풍족한 문화유적을 멀리할 수는 없었다. 델리로 들어가 델리에서 나오던가, 델리로 들어가 뭄바이로 나오던가 둘 중의 하나였다. 델리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었고, 의욕적으로 델리에서 긴 방향을 돌아 뭄바이로 나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여비를 아끼기 위해 경유 노선을 이용했는데 좀 과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 콸라람푸르, 방콕을 거쳐 델리에 닿았을 때 이미 여행을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렴한 비용도 좋지만 리허설에 너무 힘을 쏟았기에 다시 생각해볼 만한 선택이다. 수속을 마치고 나서자 앞날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인도인들의 진한 냄새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지만 개인차가 있는만큼 생각보다는 견딜만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공항 자체가 한국의 버스 터미널 수준이었다.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웠으며 기둥마다 씹는 껌을 뱉어낸 짙은 오렌지색 오물로 가득했다. 게다가 공항 내부는 정전으로 모든 일정 안내 모니터마저 꺼진 상태였다. 지금의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을 생각하면 아득한 얘기를 하는 것만 같다. 곧 혼란스러운 정신을 수습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어차피 이곳은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한데 스스로 내려놓아도 괜찮겠다는 여유가 생겼다. 이 순간이 한국에서 꽤나 깔끔을 떨었지만 여행 이후 180도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평생에 걸쳐 의미있는 순간해야할까. 왜인지 모르게 씁쓸한 맛도 있다. 드디어 새 차 시트의 비닐을 뜯었다고 할까. 어쨌든 여유를 가지자 여행의 설레임과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서서히 이제 여행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루피로 환전하는 사이 어서 빨리 인도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자세히 보니 시끌벅적한 이 곳의 모든 게 난생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꽤 괜찮은 적응력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스스로 안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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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뚜브 미나르 유적지 | ||
혹자는 인도 여행의 관문일 뿐 여행지로써 델리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은 정확하다. 가장 인도스러운 대도시 특유의 번잡함, 혼잡한 일상에서 떠나온 여행객에게는 지치기 쉽다. 도로에 차와 사람들 뿐 아니라 온갖 동물까지 걸어다니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뒤엉켜 시끌벅적하게 웅성이는 곳이 바로 인도의 수도 델리이다. 또한 북적이는 인파와 동냥하는 거지들 그리고 노소를 불문하고 관광객에게 수작부리는 현지인들 때문에 여행 자체가 불편하다. 무슬림 문화 유산 위주의 유적지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정작에 인도로 여행을 왔다는 것은 편안한 휴식을 위한 여행을 아니지만 유유자적 여유롭게 돌아다닐 환경이 못된다. 하지만 그 모습이 바로 가장 인도스러운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델리는 인도라는 나라에 두 발로 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다. 그렇다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이 성가신 도시,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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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너트 플레이스의 상점가 | ||
온갖 동물들로 넘쳐나는 혼잡한 도로는 세상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귀찮은 현지인들이 달려들면 무시하기도 하고 싸우며 화도 내고 흥정하기도 해보는 것이다. 지치면 떠나는 것도 여행자의 자유다. 하루 정도 부딪혀보고 일정을 조정해도 문제는 없다. 또한 델리에서의 불편한 경험이 남은 여정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숙소, 릭샤, 음식점 등을 경험해보고 스스로 기준과 방법을 세운다는 점에서 델리는 일종의 전진기지와 같은 역할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일단 델리-자이푸르-아그라를 지나치면 북인도의 무슬림 유적지도 흔히 조우할 수 있는 문화재가 아니다. 델리의 관광지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추측해 본다면, 대부분이 붉은 사암에 비슷한 모양새로 지어진 이슬람 건축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유럽을 가도 처음에는 유럽식 주택에 눈길이 가다가 이내 지루해지는 것도 같은 논리가 아닐까.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산들의 상당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델리에 볼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솔직히 서울에서 볼 것이 없다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델리라는 도시를 좀 더 깊숙히 살펴보면, 무슬림의 힌두 정보사 외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를 찾아볼 수 있다. 현대사와 인물의 흔적을 쫓아 볼 수도 있다. 구석구석 의미를 가진 장소들을 하나하나 방문한다면, 사실 델리를 정복하기에 3박4일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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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마 마스지드 무슬림 사원 | ||
델리에 도착하여 그날 저녁 배낭여행객들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빠하르간지에서 둥지를 틀었다. 이미 늦은밤 골목길은 한산했다. 공항에서 잡아 탄 오토릭샤를 통해 숙고를 몇군데 소개받았다. 어차피 그들 서로 간에 수수료가 오갈 것이다. 가벼운 흥정을 거쳐 숙소를 잡았다. 구석진 게스트하우스의 눅눅한 잠자리였지만 침낭을 펴고 고슴도치처럼 몸을 감싸니 금새 곤한 잠에 들었다. 이미 늦은 시각이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인도에서 밤은 없다. 인도 여행의 적기는 11월에서 2월까지의 겨울철이다. 낮과 밤의 일교차는 있지만 비가 적고 비교적 날씨가 선선한데 이 시기에는 보통 대여섯시가 되면 하늘이 어두워진다. 조명 시설이 충분하지 못하고 전력 공급이 원활치 않아 조명이 미치지 못한 어두운 밤거리는 음산하기 짝이없다. 금욕적인 문화에 특별히 밤문화를 즐길 곳도 없고 안전의 문제도 있다. 예전에 비하면 군데군데 들어선 상권과 대형 쇼핑몰이 조금 늦은 저녁까지 불을 밝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밤문화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대다수의 인도인들은 음주를 즐기지 않는데 사실 늦은 시간 귀가할 수 있는 교통편도 충분치 않다. 야심한 시간에는 버스나 오토릭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종교적 삶과 금욕에 충실한 인도인들에게 이런 환경은 더욱 종교와 가족적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곧장 집으로 퇴근한 직장인의 귀가 시간이 보통 아홉시에 가깝다. 이 시간이 넘어서야 가족이 다 함께 저녁을 먹는데 밤문화가 존재하기란 어렵다. 인구가 많아질 수 밖에 없고 체중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식습관이다. 어느순간 밤거리는 마치 썰물이 빠지듯 한산해진다. 행인이 뜸해지면 위험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도시화된 인도인들의 성향은 더 거칠어졌다. 예전에 달리 공격적이고 시비를 붙여오는 이들도 있다. 델리의 낮시간에도 빈민가에 들어서는 것은 안될 말인데 인도를 경험하겠다며 밤거리를 배회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특히 일행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해가 뜬 인도를 경험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해가 떨어지면 일찍 휴식을 취하며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의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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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뚜브 미나르 | ||
다음날 아침 일어나 빠하르간지의 메인 바자르를 둘러보며 현지 적응을 시작했다. 인도의 밤에 대해 지나치게 겁을 준 것 같지만 일련의 사건사고들을 접하면서 알면 알수록 더 조심스러워진다. 혹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알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과 무모한 것은 다르다. 게다가 어둠 속에 잠겨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인도의 진짜 모습이 일출과 함께 서서히 그 윤곽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보고 겪어야 할 인도다. 시장통을 거닐다 보니 길거리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각에 도착해 간밤에 비상식량에 살짝 손댄 뒤로 먹은게 없었다.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지만 망설여졌다. 처음부터 인도 음식 문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먹어보면 인도 음식 자체는 먹을만 하다. 다만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이 아닐 경우 길거리 음식이나 음식점은 무척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고픈데 장사는 없다. 여행 초기에는 잘 모르지만 인도 북부 여행에서는 잘 먹어두어야 한다. 갈수록 먹을 게 궁하다. 예나 지금이나 델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현지 음식에 질리면 코너트 플레이스까지 찾아가 맥도날드의 양고기 마하라자(대왕) 버거를 사먹었지만 이제는 체인점과 패스트 푸드점이 많이 늘어났고 모든 고기 메뉴가 닭고기라는 점이다. 만약 청결한 현지 음식을 먹고 싶다면 중심가나 쇼핑몰의 레스토랑을 찾으면 된다. 대신 메뉴당 가격은 한국 밥집과 비슷하다. 한편 많은 인도인들이 채식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 소(힌두교)와 돼지(무슬림) 고기를 금기시한다. 때문에 현지 음식점의 육식 메뉴는 닭고기가 대부분인데 제 아무리 맛있는 탄투리라도 끝내 질려버리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누군가 치킨집에 가자고 말하면 본능적으로 흘겨 본다. 바삭바삭한 치킨에 맥주는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다소 먼 이동거리를 분문하고 다른 음식을 먹겠다면 해결책은 있다. 오랫동안 티벳티안 콜로니의 마주누까틸라는 맛과 가격이란 측면에서 여행객들에게 그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또한 여행경비가 충분하다면 한식점이나 일식집을 가볼 수도 있다. 한식점으로는 궁, 서울식당 등이 있는데 맛보다는 전 종목을 아우르는 한식에 대한 간절함으로 찾을 곳이다. 일식집 타무라의 점심 메뉴로는 핫 팟 우동과 벤또가 먹을만 하다. 먹고 자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으로는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잡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청결하고 한식도 나오는 곳은 많지만 이러한 요건 충족시키는 경우 회사 출장자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배낭여행객에게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결국 이는 비용과 선택의 문제다. 알고보면 인도에서도 편하게 여행 다닐 방법은 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좋은 숙소에 머물면서 택시를 임대해 돌아다니는 것과 저렴한 현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오토릭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의 경험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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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드 델리 시장가의 음식점 | ||
적응은 필요했지만 첫 만남부터 델리의 모습은 현란했다. 엄청난 인파, 소음 그리고 매연으로 가득찬 혼잡한 거리 속에서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 돼지, 말, 양, 낙타, 코끼리가 인파에 섞여 지나갔고 그 틈에 릭샤가 뒤엉켜있었다. 게다가 길을 걸을 때는 소똥을 피해가야 했는데 어쩐지 소똥을 피하는 데에는 재주가 있었던지 순간 방심하더라도 절대로 소똥을 밟는 일이 없었다. 길가에는 소똥을 모아 동그랗게 반죽해 놓았는데 그걸 땔감으로 쓴다고 했다. 그렇게 소똥을 피하며 이열치열에 점입가경한 마음으로 최대 이슬람 사원인 자마 마스지드을 거쳐 찬드니 초크까지 두 발과 자전거 릭샤를 이용해 들어가 보았다. 릭샤에서 내려 좀 더 골목 깊숙히 걷기 시작했다. 올드 델리의 거리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 같았다. 그토록 두려운 미노타우로스를 피해 몇 번이고 되돌아나갈까 고개를 돌렸지만 들어온 길도 이미 아득해 보였다. 테세우스처럼 현명하지 못한 탓이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길 속을 헤매이다가 겨우 빠져나오자 옷은 땀으로 흥건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덧껴입었던 상의들은 이미 한 손에 힘없이 들려 있었다. 인도의 겨울 여행은 일교차가 심해 두까운 외투보다는 얇은 옷들을 여러벌 껴입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피곤이 몰려와 곧바로 오토 릭샤를 잡아 탔다. 오토 릭샤를 타고 탁 트인 도로로 나오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릭샤가 속도를 높이자 후끈했던 열기는 시원한 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양옆의 문이 없는 오토 릭샤의 자연 냉방이다. 아스팔트 도로에는 여전히 아지랑이가 피어오랐지만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자 이마에 송송이 맺혔던 땀방울이 어느덧 씻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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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마윤의 묘 | ||
이틀째부터 본격적으로 델리의 유적지를 여행했다. 인디아 게이트와 대통령 관저 및 국회의사당을 둘러본 뒤, 뿌라나 낄라(올드 포트), 마하트라 간지 선생의 화장터인 라지 가트를 거쳐 랄 낄라(레드 포트)까지 가보았다. 그리고 세번째 날은 오전에 다음 기착지인 자이푸르행 열차표를 예매한 뒤 델리 남쪽에 위치한 꾸뚜브 미나르, 바하이 로터스 템플을 방문했다. 타지마할과 겹치는 후마윤의 무덤은 제외하면 정석에 가까운 코스였다. 직접 찾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만약 편안하게 돌아볼 생각이라면 현지 여행사를 통해 시내 관광을 일임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물론 그 밖에도 가 볼 만한 장소는 많다. 박물관이나 숨겨진 유적지도 있고 근교에 새롭게 지어진 사원도 있다. 좀 더 꼼꼼히 여행을 준비하면 아는 만큼 많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모를까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앞두고 눈 앞의 델리만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여행 후반부에 넉넉한 시간을 할애해두고 나머지 일정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간디 박물관에 갔는데 또 네루 박물관을 갈 것인지, 타지마할과 랄 낄라를 보기 위해 아그라에 가는데 델리의 후마윤의 무덤과 랄 낄라를 볼 것인지 등도 선택에 달려 있다. 델리는 인도 여행의 관문이다. 이 말은 만약 다시 인도를 방문할 경우 다시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령 다시 오지 않더라도 다음이라는 여지를 남겨 놓는것도 나쁘지 않다. 떄로는 불완전한 경험이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 더욱이 델리 여행이란 유적지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보다는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 속 인도인의 삶과 문화를 엿보는 것에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올드델리의 시장을 거닐며 이곳에 생활에 익숙해졌다면 이미 앞으로 펼쳐질 인도 여행을 만끽할 준비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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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힌두 사원 | ||
마지막 날 기차 시간을 앞두고 코너트 플레이스 앞을 서성이다가 현지 영화를 한편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인도는 세계 2위 규모의 영화산업을 자랑한다. 비록 지금은 모든 극장들이 멀티플렉스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단일 상영관의 특별함을 경험하는 것도 의미있다. 인도 영화는 러닝타임만 세 시간으로 중간 휴식 시간까지 있을 정도로 길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인도인들은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심지어 영화 속 춤과 노래에 맞춰 끊임없이 들썩이는 그들의 모습 속에 삶의 열정이 4DX처럼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태어날 떄부터 어느 정도 운명이 정해진 답답한 삶. 문득 저들의 삶에 낙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십킬로그램이 훌쩍 넘은 배낭을 매고 기차역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이곳은 과거인 동시에 현재다.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 델리는 언제 보아도 진화 도중 박제된 것만 같다. 자세히 살펴 보면 지난 십년사이 델리도 참 많은 것이 바꿔었다. 의복만 해도 전통의상을 고집하던 과거와 달리 어느덧 서구화된 복식이 보편화되었다. 도시 근교에는 아파트 단지와 고층 복합건물들이 들어섰으며 대형 쇼핑몰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메트로가 개통했으며 600만대의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그럼에도 델리는 예전과 같은 느낌 그대로다.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지나치게 오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철부지 소년같다. 과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까? 예전에도 사람들은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변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모습 자체가 인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남겨진 대부분이 이슬람 유적지였음에도 델리가 힌두교의 나라 인도의 수도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무엇과 섞여도 인도스럽게 만드는 강인한 생존력과 포용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델리는 바로 그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는 곳이다. 인도로 가는 길을 여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