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디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다르게 보기

   
▲ 자료1: 작품 <Superflat Flowers>앞에 선 무라카미 다카시

[디아티스트매거진= 염인화]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에서 작품 <Superflat Flowers>에 단번에 매료된 사실만큼은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이 작품 속에서 다양한 색상들이 진부함이나 어색함없이 어우러질 수 있던 것은 다카시의 뛰어난 미적감각 덕분일 터이다. 그는 특유의 색감과, 깜찍한 마스코트, 그리고 이차원적 평면감을 앞세우며 루이뷔통과 슈에무라 등과 협업작업을 하는 등, 현대소비사회 내에서 명성과 친숙함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온 바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현대미술계의 거장이다.

슈퍼플랫(super-flat)이란?

무라카미 다카시에 관심이 있다면 으레 “슈퍼플랫”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평생의 작품활동에 걸쳐 정립해온 독특한 예술론이다.

우선, 슈퍼플랫은 세계대전 후에 완전히 “평면화(flattened)”된 사회계급의 높낮이와 그에 따라 발전된 다양한 문화를 특징으로하는 일본사회를 상징한다.[i] 무라카미는 이러한 사회현상학적 관찰을 미술영역으로도 확장하여, ’저급한 것’ 또는 하위문화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던 요소들을 재포장하고 그것을 상위예술 시장의 영역에 소개한다. 그 일환으로 그는 자신의 ‘고급미술’ 작품들을 적절한 가격의 장난감, 티셔츠 등을 상품화함으로써 미술의 지평을 확장한다. [ii]

즉, 광의의 슈퍼플랫은 일본의 사회적 계급을 기반으로 한 취향의 차이를 무너뜨리는 것을 뜻하고, 협의의 슈퍼플랫 이론은 고급미술과 대중상업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사적 평가기준의 평등함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무라카미는 일본의 하위문화 중 하나로 구분되었던 오타쿠 문화를 분석, 재해석하여 상위 문화인 ‘순수예술’의 범주에 끼워넣음으로써 문화와 취향의 경계를 평준화 시켰다. 나아가, 무라카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세계대전을 거쳐 무의식적으로 확산된 일본인들의 욕망과 트라우마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해방적인’ 성향을 띄기도 한다. 무라카미는 본인의 작품들을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일종의 하위미술으로 여겨지며 무시당하고 ‘괴기스럽게’ 여겨졌던 일본 미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시대가 온 것”을 시사하기 위한 노력”이라 설명한다[iii].
 

깜찍한 그로테스크함의 이면

   
  ▲ 자료2: <727-727>, Murakami Takashi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의 특징은 환상적인 색채와 대비되어 강조되는, 구상의 그로테스크함이다. 관객들은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색채와 구상의 부조화로부터 묘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작품 <727-727>의 경우, 무라카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Mr. DOB”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방사능에 노출되어 피폭된 생물체의 모습을 하면서 굉장히 태연스레 포근한 색채를 덧입고 있는 것이 어쩐지 으스스할 정도이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사건에 대한 일본인의 트라우마를 은유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형태와 색채 간의 불일치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견해를 갖는 학자도 있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제니퍼 로버슨(Jennifer Robertson) 교수는 2003년 일본 롯폰기 모리 미술관의 <행복: 미술과 삶을 위한 생존가이드(Happiness: A Survival Guide for Art and Life)>전에서 “큐레이터들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속에 20세기 초의 전쟁에 대한 일본의 트라우마를 은유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조장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게 한다”고 묘사했다[iv].

그러나, 앞서 언급된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과 작가 본인의 의도 간에는 사실상 큰 차이가 존재한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직접 작성한 글과 여타 평론들을 편집하여 출판한 책인 <Little Boy: The Arts of Japan’s Exploding Subculture>를 읽어보면, 그가 특정 문제의식을 지니고 일본의 시국을 비판 및 개선하기 위해서 그런 종류의 불편함을 생성한 것은 아니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히려 일본문화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군사주의와 남성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체화하고, 그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슈퍼플랫 이론에 대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전후 일본인들의 억눌린 욕망이 내포하는 비평등한 요소들은 전혀 평등화 시키지 않은 채로 그것들을 슈퍼플랫한 것으로 포장, 문화의 표면으로 끌어올렸다는 이유에서이다.

슈퍼플랫의 비-슈퍼플랫함에 대하여

우연의 일치인 것인지 아니면 무라카미 자신도 그 아이러니를 인정해서인지, 이런 ‘비-플랫’한 이데올로기와 욕망이 내포된 작품들은 평면의 가로 형태가 아닌 세로 형태로 제작되었다.

   
▲ 자료3: 무라카미의 서울 <원더랜드(Wonderland)>전, 2013

 남성들의 성적환상이 표현된 미스코코 작품들도 그러하고,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후폭풍들을 상징하는 듯한 작품들이 그렇다. 예를들어, 자료 3의 조각들은 얼핏, 일본의 전통우산이나 야자수 등을 떠오르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자폭탄 투하 직후에 뿜어져나온 독버섯구름의 형태를 한다. 마찬가지로, 방사능에 피폭된 돌연변이를 연상시키는 많은 작품들이 세로로 설치되어 있다.

사실, 전후 일본사회에서 하위문화로 분류되어 억지로 잠식된 그들의 무의식과 욕망은 대체로 ‘슈퍼플랫함’과는 거리가 멀다. 전쟁의 패배로 인해 해소되지 않은 정복에 대한 갈망, 그것이 발생시키는 또 다른 보복적 지배욕구, 그리고 여성을 향한 노골적인 성적 시선은 본질적으로 평등성 추구하는 가치관이 아니다. 오히려,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답습하는 욕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욕망들은 “슈퍼플랫” 내지는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상위문화의 고귀한 이념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둔갑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가 보다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슈퍼플랫이론을 원했다면, 애초에 모든 불평등함의 가능성을  제거시킨 작품세계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참고 및 인용도서]

[i] Hebdige, D (2007). Flat boy vs. skinny: takashi murakami and the battle for japan.

[ii] Rothkopf, S (2007). Takashi murakami: company man.

[iii] Murakami, T (2005). Little boy: the arts of japan’s exploding subculture = リトルボ-イ : 爆發する日本のサブカルチャ-.ア-ト.

[iv] Robertson, J (2010). The erotic grotesque nonsense of superflat: “happiness” as pathology in japan today.

[사진출처]

자료1: http://www.nikosan.com/ 

자료2, 3: http://www.sculturein.com/news/1225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