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으로 들뜬 지난 1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세 차례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IS에 충성을 맹세한 반유대주의자의 소행으로, 유대교 회당에 참석한 2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의 연장선상으로 유럽에서 자행되는 유대인 차별과 위협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반유대주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사건들은 유럽내에서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이스라엘 당국은 4630만 달러 예산을 마련해 유럽 내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이주를 돕겠다고 나섰다. 작년에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민족국가 기본 구성원으로 제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고향에 돌아오라는 이스라엘 정책에 따라 올해 프랑스에서만 1만 5000여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 내에서는 대규모로 불법체류자 강제추방을 이행하고 있으며, 유대인 민족국가라는 이유로 이민자 배타주의가 자행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위의 사건들은 유럽 내 유대인들이 당하는 차별, 이스라엘 내의 비유대인들이 당하는 배타주의를 보여준다. <컬러풀 웨딩즈>, <웰컴 삼바>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이민자들에 대한 포옹은 비약으로 봐야하나 싶을 정도로 이민자들의 핍박은 심각하다. 오바마의 이민개혁안이 바람 잘날 없이 흔들리고 있는 걸 보니 이민자들의 나라라 불리 우는 미국도 자국민 우선권엔 별 수 없는 듯하다. 차별받는 이민자들 속에는 한인들의 수도 만만치 않으니 비단 유대인에게만 해당하는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종교와 이념, 민족차이에 벌어지는 테러 사건들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17일자 신문엔 IS에 의해 이집트 콥트교도 21명이 무차별하게 참수 당했고, 곧이어 로마를 점령할 거라는 IS의 테러 공습에 이탈리아가 떨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나와 달라서, 우리와 달라서 자행되는 비인간적 행위에 지치고 있는 요즘, 차이를 넘어 서로를 포옹하는 작품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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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들> 포스터. | ||
처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2007년에 제작된 이스라엘 영화 <누들>이다. 이스라엘 내에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자녀는 2010년 기준으로 2만 여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서류상엔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다. 영화 <누들>은 주인공으로 중국인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누들’(영화 내에서 누들을 잘 먹는다고 미리가 붙인 애칭)을 내세운다. 누들의 맞은편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배우자를 두 명이나 잃은 ‘미리’가 등장한다. 미리는 아이를 한 시간만 맡아달라는 중국인 가정부의 부탁으로 누들을 처음 만난다. 한 시간 후에 돌아오겠다던 중국인 가정부는 경찰에게 걸려 베이징으로 강제 추방되고, 미리는 엉겁결에 누들의 보호자가 된다. 미리는 죽은 남편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사랑한다는 형부의 고백, 이에 틀어진 언니와의 관계로 힘들어 한다. 이러한 상황에 등장한 누들은 미리와 언니 사이를 와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리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누들을 위해 캐리어 속에 누들을 숨겨 베이징으로 밀입국하는 계획을 짜고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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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누들> 속 누들과 미리. | ||
영화는 언어와 인종, 나이도 다른 미리와 누들의 이야기로 소통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에 남겨진 중국인 아이와 베이징을 헤매는 미리의 모습은 전도된 이방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누들을 위해 밀입국까지 감행한 미리의 헌신만을 그리지 않는다. 누들에 대한 감정은 연민보다는 오히려 공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 번이나 잃은 미리는 엄마를 잃은 누들을 이해한다. 누들은 미리의 남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직 눈빛으로만 교감하는 장면들은 차이를 넘어선 진정한 소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이의 기준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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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밴드 비지트> 포스터. | ||
또 다른 작품은 <밴드 비지트-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이다. <누들>과 같은 때인 2007년에 제작된 이스라엘 영화이다. 2007년부터 이스라엘 당국이 불법체류자를 강제 추방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하니 두 영화 모두 당대의 시대상을 나름의 방식대로 표현한 듯하다. 또한 영화 제작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자연스레 녹인 작품이기도 하다. <누들>에선 중국인 아이가 이스라엘에 남겨졌다면, <밴드 비지트>는 이집트의 경찰 악단이 통째로 이스라엘에서 길을 잃은 것부터 시작된다. 표류된 악단은 어쩌다 들어간 식당의 주인인 ‘디나’의 호의에 하룻밤을 묵게 된다. 악단의 구성원들은 삼삼오오 디나와 디나 친구의 집에 묵게 되고 하룻밤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헤브라이어와 이집트어 사이 간신히 서툰 영어가 그들 사이를 오고간다. 디나와 악단 단장 투픽의 사이는 오묘하다. 디나는 투픽에게 영화 내 관심을 표하지만 투픽의 닫힌 문은 쉽게 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둘은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투픽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죽은 이야기를, 디나는 자신의 전남편에 대해 이야기 하며 오로지 타인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 속 이야기를 한다. 다른 단원들도 어쩌다 만난 하룻밤 동거인들에게 조용하고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바람둥이 할레드는 숫기 없는 청년에게 여자 다루는 법을, 완성되지 못한 자작곡을 부르던 단원은 아이의 오르간 장난감에서 영감을, 공중전화 수신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남자는 동지애를 느낀다. 살아온 환경도, 인종도, 언어도 다른 이집트 악단과 이스라엘의 자그마한 동네 구성원은 때론 음악으로, 몸짓으로 서로 소통한다.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아랍 전통 음악이나 쳇 베이커의 노래는 영화의 잔잔한 파동을 더욱이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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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밴드 비지트> 속 디나와 투픽. | ||
위의 영화들에선 헤브라이어, 중국어, 아랍어들이 정신없이 나온다. 자막이 있다고는 하지만 낯선 언어에서 오는 생경함은 영화를 보는 동안 이어진다.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한 낯선 공간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야기는 낯설지가 않다. 진부하다기 보다는 보편적이다. 차이를 넘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이야기 속에 들어있다. 보편적 이야기가 전하는 소통 방식. 이스라엘 영화라 해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다를 것 없었기에 더욱 특별했던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