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장예진] 키치란 무엇일까? 아직은 대중들에게 생소한 예술장르인 키치는 사실 우리 곁에 쭉 존재하고 있었다. 키치(kitsch)는 고급문화나 고급예술과는 별개로 대중속에 뿌리박은 하나의 예술 장르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 우리 앞에 두 작품이 걸려있다고 상상해보자. 모네의 작품 <수련 연못> 앞에 우리는 감히 만지지도 못한 채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만 볼 것이다. 반대로 동네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 감는 세면대 위에 조그맣게 걸려있는 연못 그림을 보면 늘 우리 옆에 있었던 것 같은 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모네의 작품은 고급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동네 이발소에 걸려 있는 작품은 키치예술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물론 모네의 작품을 소유하고 싶겠지만 그것의 대체물로 이발소의 작품을 갖게 되고 그것에 어느 정도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키치의 특성으로 인해 키치예술은 중산층이 누리고 싶어 하는 문화 욕구의 동경심을 만족시키는 저급한 수단으로 보며 엘리트 비평가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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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프 쿤스(Jeff Koons | Jeffrey Koons) | ||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미술계에서 제2의 앤디워홀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돈을 휩쓸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키치의 황제 제프쿤스이다.
팝아트가 등장하면서 현대에 와서는 고급예술 소위 엘리트미술과 저급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키치는 대중예술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키치의 본질적인 개념, 즉 대중들의 일상에 밀착되어 만들어 지는 예술, 모두가 ‘어려움 없이’ 향유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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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의 언덕,Jeff Koons | ||
키치의 황제라고 불리는 제프쿤스는 예술을 상품으로 보고, ‘잘 팔리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 그리고 그의 취지와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졌다. 2014년 서울 옥션 경매에서 21억 4800만원에 최고가로 낙찰되는 등 이미 어떤 세계의 예술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의 키치를 대표하는 제프쿤스의 작품은 상류층을 위한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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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Jeff Koons | ||
이제 상류층들은 그의 작품을 상품가치가 있는 하나의 ‘브랜드’로 보고 그들의 랜드 마크에 자랑스러운 장식품으로 둔다. 한국의 한 유명 백화점에도 제프 쿤스의 작품이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들의 막대한 자본으로 이뤄지는 막대한 거래이기에 누구도 무어라 말은 하지 않지만 그 거래가 편히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을 키치의 황제라고 자처하는 그가 앞서 말한 ‘키치’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산품들을 소재로 삼고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사람을 고용하여 대형 조각품을 만든다. 그리고 소박한 소재로 시작한 그의 조각은 우리와 일상이 확연하게 차이나는 상류층에게 팔린다.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졌다지만 아마 상류층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그것을 고급문화라고 지칭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만의 브랜드를 만들거나 이미 유명한 브랜드를 벤치마킹 하여 자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영역을 표시한다. 미술영역에서 제프쿤스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미 거대한 자본과 떼놓을 수 없는 그의 작품은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점점 더 가격이 높아지고 가치가 상승한다. 우리는 이제 그의 키치예술을 모네의 작품 보듯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제프쿤스는 키치의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그는 자신을 ‘키치의 황제’라고 자처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를 키치의 황제라 부를 수 있을까? 근래에 키치의 개념이 모호해졌지만 키치예술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