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이준건] 미국 여행을 떠나는 신사숙녀 여러분, 이미 미국에 대해 빠삭하게 자료조사를 끝마친 여러분이라면 이 글이 아마 큰 도움이 안 될 듯합니다. 아주 진귀한 곳을 소개하는 글도 아니고, 미국에 가면 꼭 먹어야할 음식을 소개하는 글도 아니거든요. 대신 저는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당연히 경험하게 될, 그리고 익숙해지게 될 몇 가지 소소한 재미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혹시 미국에 여행을 가신다면, 적응하면서 소소한 이 세 가지 재미를 떠올려 주시길.
1. 팁(TIP)문화에 관하여
미국은 팁 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팁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팁을 주려고 하면 곤혹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제가 그러했죠. 하지만 팁 문화도 알고 나면 무척 합리적인 문화에요.
우리나라는 팁에 관하여 무척 부정적인 견해가 강합니다. 주는 사람은 괜히 있는 척하는 것 같아서 주기가 부담스럽고, 받는 사람 역시 자신이 그렇게 후줄근해보였나, 하고 생각하거나 주는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이래저래 팁이란 상호 간에 썩 좋지 않은 교환품인 것이죠. 허나 미국에서는 팁을 주지 않는 게 대단한 실례입니다. 호텔을 청소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 모를까, 눈앞에서 뻔히 서비스를 했는데도 팁을 주지 않으면 도리어 왜 팁을 주지 않느냐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팁이란 자신의 노동에 대한 평점이자 별점이요, 정당한 권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팁을 줄 때 조심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개 있습니다. 첫째, 너무 적게 줘선 안 됩니다. 저는 처음에 길거리에서 베이스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사람을 보고 동전 몇 개를 주려고 했는데 함께 여행하던 누나가 그 금액을 보더니 저지하더군요. 그만한 금액은 오히려 그 사람의 기분만 나쁘게 한다는 게 그 이유였죠. 이를 통하여 팁은 적선이나 기부와 명확히 구분됩니다. 적선이나 기부는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결코 예의에 어긋나진 않지만―물론 멋진 양복을 빼입고 1센트만 준다던지 하는 건 개인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도 있지만―팁은 다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팁은 노동의 평점이기 때문이죠. 적절치 못한 금액을 팁으로 준다는 행동에는 ‘네 노동에 대한 수고비는 주겠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물론 다다익선이라고 많이 주는 것에는 큰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팁 문화를 이해하기도 어려웠거니와 기본 금액에 세금(tax), 거기다가 팁까지 계산하면 지불해야할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팁이라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동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면 팁은 지극히 당연한 줘야하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금액은 노동의 대가와 자본ㆍ자재의 비용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소유주의 자본금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실제로 노동을 제공한 사람이 잘하든 못하든 우리는 자본가에게만 정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죠. 그러나 팁은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입니다.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일종의 별점을 부여하는 행위와도 연관이 되므로 팁을 통해 불만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팁은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제도라고 할 만하죠. 특히 팁 문화의 정착은, 한국의 고달픈 길거리 예술가들을 위해서도 필요할 성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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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는 길거리 공연이 참 많다. 사진은 뮤지컬 <시카고>의 홍보용 길거리 공연. | ||
2. 동부: 무단 횡단하는 재미에 관하여
뉴욕에 오면 경험할 수 있는 진귀한 경험 중 하나는 바로 무단횡단의 신박함입니다. 뉴욕은 횡단보도의 거리가 짧고 스트릿이 계속해서 걸쳐 있으므로 횡단보도의 양 또한 많죠. 그래서일까요, 횡단보도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아는 뉴욕시민과 외국인이 넘쳐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무단횡단을 하긴 하더라도 주변의 눈치와 경찰의 시선 유무를 살핀 뒤에야 비로소 무단횡단을 시도하는데, 이곳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휙휙 지나갑니다. 빨간불이든 하얀 불이든―미국은 길을 건너는 표시가 하얀 불입니다―, 주변에 경관이 있든 없든, 다른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차만 없으면’ 지나갑니다. 혹자는 그럴 거면 횡단보도를 왜 만들었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만 안타깝게도 뉴욕에는 신호등만 있고 횡단보도는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곳도 있어요. 서부에서는 횡단보도 자체가 거의 없는 데다 보행자가 건너가기 위해서는 신호등에 부착된 버튼을 눌러야만 하니, 뉴욕이라고 그 사정이 다를 리는 없죠.
그러니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횡단보도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동차를 위한 표식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습니다. 이는 이곳 사람들의 인식이 우리와는 현저히 다른 까닭이에요. 2012년에 한창 유행했던 어느 대선 후보의 슬로건처럼 ‘사람이 먼저다’ 정신을 철저히 지키는 까닭에 그들은 오직 보행자가 우선입니다. 자동차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그를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물론 그럴 경우 운전자는 언제 뉴욕시민이 돌출할 지 쉬이 유추할 수 없어 혼란스러울 테니, 자동차들에게 사람이 지나갈 수도 있다는 신호의 표식으로 신호등을 만든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에 온다면 반드시 무단횡단의 짜릿함과 익숙함을 맛보길 바랍니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분이라면) 처음에는 남들 따라 무단횡단을 한다는 사실에 묘한 짜릿함을 느끼다가 후에는 그저 익숙해집니다. 아주 익숙해진 베테랑이 되면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NYPD(Newyork Police Department, 뉴욕경찰) 앞에서 당당하게 횡단보도를 런웨이할 수 있을 터! 사실 어쩔 때는 경관이 먼저 무단횡단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한국 횡단보도의 엄격한 분위기가 원망스러워질 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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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불에 건너고, 횡단보도도 그려져 있지 않는 곳이 많다. 솔직히 이 정도면 횡단보도는 그저 차량의 전유물이 아닐까. | ||
3. 서부: 느긋한 일처리에 관하여
누나와 미국의 서부를 여행하는 동안 차를 대여했는데, 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고 이럴 때를 대비해 보험을 엄청 들어놨던 터라 금액 문제는 별로 걱정거리가 아니었으나, 일처리가 얼마나 느긋하고 여유롭던지 인내심 레벨을 많이 올릴 수 있었습니다.
먼저 미국의 보험 제도부터 잠깐 살펴볼까요. 미국은 증거가 중요한 나라입니다. 구두 증거는 안 되고, 반드시 서류 증거가 있어야만 합니다. 보험을 적용하기 위해서 중요한 두 가지 준비물이 필요했는데, 경찰의 사건리포트와 이를 토대로 작성한 보험사의 사건번호(케이스넘버)였죠. 이 두 가지만 제출하면 굳이 가해자가 병원에 가지 않아도 피해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보험비와 관련된 문제는 보험사와 병원이 밀당을 통해 알아서 정한다고 그러더군요.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매우 간단한 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경찰의 사건 접수는 경미한 사건일수록 늦게 되기 때문이죠. 이번 사건의 경우, 신청한 뒤 무려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이 사건 리포트를 써 주었습니다. 분명 신청은 아침에 했는데 밤 11시 40분 경에 경찰이 찾아왔었죠. 게다가 보험사는 보험사대로 연락이 잘 안 됐어요. 일처리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한 탓인 걸까, 보험사 직원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렵더군요. 전화를 걸면 ‘사람이 많으니 잠시 후 다시 전화해주세요.’를 반복하는 탓에 1시간은 넘게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죠. 그러고 보니 차량을 빌릴 때도 회사 접수원이 달랑 두 명 있었더랬지…….
서부는 상대적으로 동부에 비해 개발이 덜 된 지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순하고 여유로우며 느긋한 편입니다. 달리 말하면 일처리를 매우 느리게 한다는 것인데, ‘빨리빨리’ 정신의 선두주자인 한국사람(특히 서울사람)에게는 고통으로 느껴질 정도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80년 인생,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무에 그리 빨리 할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만 적응하면 이 여유로운 삶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즐겁고 여유로운 미국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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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 해안에서 벌어진 결혼식. 여유가 넘치는 풍경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