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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레이시 에민 , <My bed>,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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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았던 목도리 말라빠진 어깨에 두르고
늦은 밤 내내 못 자고 술이나 마시며 운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디아티스트 매거진=양소현]10cm의 1집 타이틀곡 ‘그게 아니고’의 가사 중 일부분이다. 헤어진 연인이 그리워서 우는게 아니라 보일러가 고장나서 운다고 둘러대는 찌질함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의 원인을 자신이 아니라 제 3자의 탓으로 돌린다. 상처를 받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두렵고 사랑의 실패는 자존감을 저 깊은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애써 합리화 시켜 놓은 거짓말들은 이미 상처로 너덜해진 마음을 다시금 들쑤시고야 만다. 우리는 변명거리를 늘어놓을수록 구차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변명을 한다는 행위 자체는 이미 패배했음을 직감적으로 인정하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어두운 상처를 어떤 변명도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가가 있다. 텐트속 자신과 함께 잤던 102명의 사람들과 낙태한 아기의 이름을 새긴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과 자신이 실제 쓰던 침대를 고스란히 옮겨온 <나의 침대>로 현대미술계에 충격을 준 트레이시 에민(1963~). 성폭행을 당한 어린시절과 마약중독, 낙태경험등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숨기고만 싶을 이야기를 가감없이 작품으로 표현했다. <나의 침대>는 그녀가 자살충동을 느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며, 쓰다만 콘돔, 널브러진 술병, 속옷은 마치 얼굴한번 본적없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것 같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침대만큼 한 사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물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이토록 평범한 침대에서 한 여자의 속마음을, 뼈아픈 외로움을, 뒤틀린 욕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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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레이시 에민 | ||
그녀는 구질구질하고 때론 천박해보이기까지 하는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주고, 느끼게 할 뿐이다. 평범한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진실성이 없다면 거기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적어도 그녀는 예술앞에 솔직했으며,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통해 누군가는 깊은 공감을 하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얻는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공감시키는데엔 커다란 무언가가 필요한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참으로 두렵고도 낯부끄러운 일이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예상외로 아픔이 무겁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공감 가능한 아픔
“언어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더이상 상처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아픔은 더 이상 개별적인 상처로 남지 않는다. 초라한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그녀가 원했던것은 무엇일까. 그저 현대 미술계를 향한 일시적인 조롱이나 시각적 충격만은 아닐것이다. 그 저편엔 이토록 지저분하고 용납하기 힘든 자신의 일생을 단 한사람만이라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길 바라는 한 여성 예술가의 처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