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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리타 Educating Rita>의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김유영] “결단하여 해야 할 일은 실행하겠다고 결심하라.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라.”-프랭클린,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새로운 결심을 한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곤 한다. 앞으로는 일찍 일어나야지, 스마트폰 하는 시간을 줄여야지 등의 일상 속 사소한 다짐부터 뭔가를 배워 지적 욕구를 채우고 싶다는 소망, 나 자신을 알고 자아를 찾고 싶다는 보다 심오해 보이는 목적의식까지, 이 모두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항상 의지를 다진다. 그렇지만 그 의지는 쉽게 잊히고 한낱 충동으로 끝날 때가 많다. <리타>는 이렇게 의지적이지 못한 우리들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여 자신의 의지가 약하고 게을렀음을 깨닫게 한다. 연극 속 주인공 리타는 우리와 달리 의지가 충만한 사람이다. 그녀는 세상을 알고 자신을 가꾸고 싶다는 바람과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로 자신에게, 그리고 의지를 상실하여 시간을 허송세월하던 프랭크 교수에게 변화를 가져 온다.
리타는 20대 후반의 주부미용사이다. 그녀에게는 남편과 집이 있고 미용사라는 직업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어 평생교육원에 들어와 프랭크 교수에게 문학 수업을 듣게 된다. 그녀가 첫 수업 날, 교실에 첫 걸음을 내딛을 때의 모습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교수의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하기는커녕 자기 이야기만 꺼내며 수다를 떠는 모습에는 백치미가 가득하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에로 소설을 꼽으며 그 작가 이름인 리타를 자신의 별칭으로 따와 이로 불리길 원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렇게 거침없고 솔직한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자기 머리가 ‘텅~’ 비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에 프랭크 교수는 “자기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라고 대답한다. 말 그대로 그녀는 무지할지라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명하기도 했다. 프랭크 교수가 싫어한다는 여타 젊은이처럼 아는 것을 뽐내려 하고 겉멋이 든 사람은 아니란 것이다.
리타는 초장부터 아는 게 없다며 자신의 무지를 뽐냈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누구보다 크다. 이 세상 전부를 알고 자신의 인생에서도 의미를 찾고 싶다며 교육에 대한 엄청난 의지를 보여준다. 공부를 하는 아내가 달갑지 않다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에세이를 써오라고 내준 숙제에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써온다. 비록 무식한 그녀지만 배움에 관해선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이러한 그녀의 생동감은 시들어버렸던 프랭크 교수에게도 활기를 불어넣는다. 시인의 꿈이 좌절된 후 교수실에 처박혀 오만과 권태 속에 살아가던 프랭크 교수는 리타를 통해 잃었던 의지를 조금씩 얻게 된다. 열의에 찬 그녀의 의지적인 모습은 프랭크 교수뿐만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마저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던 지난날들을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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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프로그램북 안에 있는 깨알 팁! 결말에 대한 해석은 각기 나름이다 | ||
리타는 프랭크의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을 직접 이끌려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녀는 본래 주체적인 여성이었고 자신의 뜻대로 삶을 사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며 남편 몰래 피임약을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내이자 당대 여성으로서 짊어 져야 하는 의무와 속박, 그리고 가부장적인 남편에 의해 그녀는 그 주체성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느 날처럼 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술집에서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가를 흥겹게 부르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남편과 아버지는 만취해서 눈치도 못 채고 홀로 울고 있던 어머니는 왜 우냐는 리타의 질문에 “이 노래가 너무 지겨운데, 아는 노래가 이것밖에 없어.”라고 대답한다. 이 이야기를 프랭크에게 전달해주던 리타의 표정에는 남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선택과 열정에 따라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남편의 주도 하에 모든 것을 따라야 했던 한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보다 주체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배움을 갈망하는 자신을 내쫓으려는 남편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교육에 매진하여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리타는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교양 있는 여자, 지적인 대학생’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변화가 긍정적이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교양을 쌓으며 다른 대학생들과 닮아진 그녀는 자신만의 거침없던 솔직함과 생동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틀에 갇히지 않던 그녀가 남들과 비슷해지고 자신이 좋아하던 “리타”의 에로소설을 여타 교양인처럼 ‘저급’이라 폄하하는 그녀의 모습은 교육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프랭크 또한 그녀의 변화를 달가워하진 않는다. 독특했던 그녀가 본연의 모습을 잃어간다는 걱정과 배움에 있어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제자가 자기를 더 이상 올려다보지 않는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따라서 프랭크는 리타의 변화를 경계하고 리타는 자기 바람대로 바뀐 자신에 대해 적대적인 프랭크와 계속 갈등을 빚는다.
“인생을 가장 인생답게 인도하는 힘은 의지력이다.” -에머슨
지속되는 갈등 속에서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둘은 다시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계속된 갈등과 고민 속에서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봤기 때문인지 둘은 이전과는 약간 달라 보인다. 점차 획일화되어 가던 리타는 프랭크와의 잇따른 다툼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다소 되찾은 것 같았다. 프랭크 역시 리타로 인해 자기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시적열망과 오만함에서 자유로워진 듯했다. 그리고 둘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선택에 따른 의지적인 삶을 살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걷자고 다짐한다. 이처럼 리타와 프랭크는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반동하기도 하며 서로를 한층 더 의지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리타는 자신의 창작 욕구를 실현하지 못해 절망감에 빠진 프랭크가 자신을 되돌아보게끔 이끌었다. 프랭크는 리타를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고 그녀가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고했다. 즉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게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로써 둘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뭐가 됐든 선택을 내리고 후회 없이”(극의 끝자락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에 올-인하자는 의지적인 사람으로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연극 홍보 카피라이트 중에 교양과 지식을 쌓은 리타가 행복해졌는지, 이 열린 결말에 대해 관객이 각자 판단해보라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리타의 변화가 앞으로 자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밟았어야 할 하나의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개성을 잃어가는 리타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마지막 모습에선 그녀가 고민과 성찰 끝에 자기 본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았다고 느꼈다. 물론 관객으로서의 소망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다시 생동감을 띈 그녀의 행동과 독특해진 그녀의 패션(리타는 막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그 패션이 리타의 내면을 반영한다.)에서 이를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 그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적이고도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이라 추측해본다. 또한 그 모습이 그녀뿐만 아니라 프랭크, 나 자신, 그리고 의지를 찾고자 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되길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