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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키워드로 본 데미안 허스트

 현세기 가장 값비싼 작가로 불리는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토막낸 동물의 시체를 유리상자 안에 넣어서 전시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의 작품을 단순하게 ‘실험’, ‘논란’, ‘잔인’ 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죽음’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노래합니다. 만약 데미안 허스트의 모든 작품을 하나의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기획될 수 있지 않을까요?

Part 1 – 형태로써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 시체

   
▲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전시작품 :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천년>, <찬가> 등

데미안 허스트가 첫 번째 전시실에서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에서는 죽은 상어가 움직입니다. 모터가 달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상어를 ‘생명’이라고 인지합니다. 그 상어가 죽어있는 박제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우리는 작품 앞에서 두려움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순식간에 두려움의 감정이 사라지고 평안함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두려움과 평안함, 이 역설적인 감정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죽음 이후의 ‘평온한 세계’에 대해 논하곤 합니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편안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죽음을 피하고, 꺼려하며 부정적 이미지라는 편견 속에 가둬놓는 것일까요?

Part 2 – ‘신종교’화된 약과 그에 대한 현대인의 추종

   
▲<Lullaby Winter>

전시작품 : <Lullaby Winter>, <The Religion>, <The Crucifix> 등

데미안 허스트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매우 예리하고 시니컬하게 포착해내었습니다. 작품은 감상자에게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고, 교훈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냉철하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뿐이며, 수용자들이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던 그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말 그대로 그의 작품은 현대의 메멘토 모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경험은 매우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을 살펴볼까요? 인간들은 노화, 더 나아가 죽음을 거스르기 위해 피부를 탱탱하게 하는 보톡스, 장기의 기능 강화를 위한 인공장기이식, 더 나은 지능을 위한 유전자 치료 등의 방법을 개발해왔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죽음을 뛰어넘겠다는 인간의 발상 그 자체가 너무나 오만한 것은 아닐까요?

part 3 – 박제된 나비의 살아있는 아름다움

   
▲ <나비 연작>

전시작품 : <나비 연작>, <사랑의 양면성> 등

작가는 죽음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강렬한 원색 바탕에 실제 나비를 붙였다니, 소름끼친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인 나비의 형상은 원색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아름다운 죽음을 보여줍니다. 과연 죽음은 아름다울 수 있는 개념일까요? 죽은 나비는 그대로 아름다운데,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도 아름다움은 불변하는 존재일까요? ‘나비’라는 아름다운 것이 죽어서 아름다운 것일까요, 아니면 죽어서 ‘전시’되었기에 아름다운 것일까요? 아름다움을 위해 영혼도, 마음도 없어져 버린 생명체를 이러한 모습으로 보관하는 것은 옳을까요? 인간에게 대입해보기로 하죠.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인간의 특성을 거부하고 존재를 ‘보관’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part 4 – 아무도 모르는 자살 행위

   
▲ <후천성 도피불능>

전시작품 : <후천성 도피불능> 등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이 극한의 두려움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흡연이라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물론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한 기호식품이라고는 하지만, 왜 인간은 스스로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일까요? 인간의 욕망은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일까요? 여기에서 인간이 죽음에 대해 스스로 갖게 되는 인지력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병에 걸린 뒤에야 뒤늦게 죽음이 엄습해 옴을 느끼고, 두려움에 떠는 것일까요? 모두가 흡연을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인간이 죽음을 인지하는 능력도 개개인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요?

특별 경매 – 현존하는 작가 중 경매 최고가 기록 경신, <신의 사랑을 위하여>

   
▲ <신의 사랑을 위하여>

죽음의 상징인 해골을 허영심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로 포장하여 욕망덩어리인 인간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조망하였습니다. 찰스 사치 재단은 이번 전시회를 기념하여 2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던 이 작품 중 한 해골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가장 ‘논리적인’ 가치를 제시하신 분께 실제 판매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넘어서, 죽음을 표현했다는 데에 어떤 가치가 숨어있을까요?

[디아티스트 매거진=전민지]당신의 삶이 예술이다. THE ARTIST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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