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상아]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인 나는 주말이 무섭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말은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삶에 최악의 날로 꼽힌 날이다. 그로부터 일주일째 밤잠을 설쳤다. 까만 밤에 잠이 들면 별도 없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생리주기를 훨씬 넘겼지만 아직 내 몸은 감감무소식이다. 따뜻한 햇살과 한적한 바닷가가 절실했다. 내게 주어진 자유로운 단 하루의 휴식을 위해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화요일 저녁 마지막 속초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속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2시간이면 충분했다. 20,000원이 안되는 돈으로 드디어 서울을 벗어난다. 버스 창문을 통해 어두운 밖을 내다보았다. 속초로 힘차게 내달리는 버스는 짧은 여행에 흥분된 내 마음을 반영하는 듯했다.
늦은 시간. 사정사정하여 예약해놓은 숙소를 찾았다.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km 거리에 있는 아늑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짐이랄 것도 없었지만 대충 가방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와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멀지 않은 곳에 까만 바다가 있었고 파도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모래사장을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아무도 없는 거리가 을씨년스러워 숙소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홍대 앞 버스킹 소리가 없는 곳에서의 하룻밤이었다. 취객들의 고성방가도 없고,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도 없었다. 불빛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이 얼마 만의 고요함인가. 잠시 동안 그 고요함이 어색하여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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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덮힌 속초 장산항. | ||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절로 눈이 떠졌다. 일출을 보기로 하였으니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옷만 주섬주섬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조용한 거리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울 것이 분명한 시간인데 온 세상은 눈부신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머리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솜 같은 것들이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밤새 눈이 내린 것이다. 숙소 앞 영랑 호수공원은 그 흔한 잔물결도 일지 않았고 주변을 에워싼 설악산 산새와 함께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그 속에 움직이는 생명체는 나 하나였다. 새하얀 길바닥에 내 발자국이 하나 둘 도장을 찍었다. 첫새벽 오로지 나 하나만이 동적인 존재였다. 오분 정도 걸었을까, 장산항 모래사장은 온 데 간 대 없고 온통 눈밭 천지였다. 쪽빛 바다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였고 밀려왔다가 밀려나갈 뿐이었다. 그 무심한듯한 움직임이 나를 끌어당겼다. 가까이 다가가 하염없이 쳐다만 보았다. 수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새파란 동해와 이따금 발개진 볼 위로 떨어지는 눈꽃들. 바라보는 것만으로 머릿속을 비우게 만드는 그 풍경들. 일출 따위는 이미 뒷전이었다. 매일 뜨는 해 오늘 안 보면 어떠한가, 박력 넘치게 밀려와서 미련 없이 부서져버리는 저 파도만이 내 가슴에 꽉 들어차 있었다. 어차피 눈구름에 가려져, 해도 보이지 않았다. 잠이 모자랐지만 일찍 나갔다 오길 잘했다. 속초는 바다뿐만 아니라 설악산을 구경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산은 타야 제맛이지만, 이번만큼은 먼 발치에서 눈 내린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도 산을 오르는 만큼의 벅찬 감동이 있었다. 느긋하게 응시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산자락 하나하나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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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빛 바다. 속초 등대전망대. | ||
이로써 한 달은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높은 빌딩에 가려 늘 손바닥만 한 하늘만 보고 살았었는데, 속초에 와서 힘을 얻고 간다. 이유 없이 막막한 가슴을 술로 달래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 나는 떠났다. 꼭 바다 건너 다른 문화가 아니어도 좋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드높은 산맥을 자랑한다. 이 말인즉 슨, VIEW가 좋다는 말이다. 산이면 산대로, 바다면 바다대로. 핑계야 아무려면 좋다. 컴퓨터 재부팅 하듯 사람도 하루쯤 RESET 해보는 게 어떨지. 나는 다음 여행을 또 계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