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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언젠가도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을 최종적이고 불가변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 내일의 선택이 열려 있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모두가 떠나고 빈자리만 가득한 과학실에서 두 학생은 사랑을 나눴다. 그들이 서로의 입을 맞대는 순간 카메라의 플래쉬가 번뜩였다. 만약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였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랑을 나눴던 그들은, 남자였다. 문제의 사진이 학교 게시판 벽보에 붙던 날,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평범한 사랑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한 학생은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했다. 선배가 오토바이를 훔쳐 오라고 시켰던 까닭이었다. 주행 도중 사고가 일어났고 오토바이는 박살이 나버렸다. 당연히 학생이었던 그는 교장실로 끌려와 훈계를 받았고 열흘 간 징계실에서 반성문을 쓰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일찐’ 박현신은 거기서 전교 1등 정이레를 만난다. 그는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자신과 동일한 벌을 받는 것이었다.
최고 우등생과 사고뭉치의 만남이라는 소재는 그리 특별한 소재는 아니다. 학원물 만화에서도 우등생과 사고뭉치가 친해지는 경우는 허다하며 드물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경우를 몇 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있다면 일상을 그대로 복제한 듯한 소재들이다. 10대라면 빼놓을 수 없는 거친 욕설, ‘빵셔틀’과 그들을 부리는 일진들, 학생들을 명예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선생님과 교장. 이런 소재들은 극을 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차라리 그들이 이 세상 저편 너머의 존재라면 모를까, 기억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라는 이름의 지옥
극에서는 주로 징계실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공간의 변화는 매우 역동적인 편이다. 징계실은 교실이 되기도 했다가 과학실·양호실로 변하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뒤편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자 그 공간은 바로 옥상이 된다. 그러나 이런 무수한 공간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모두 만족하는 공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레는 시종일관 불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책상에 붙어 앉아 반성문을 쓰고 공부한다. 학교의 사고뭉치인 현신은 출입이 금지된 옥상으로 올라가 바람을 쐴 때에야 비로소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봉수는 일진들과 마주치면 돈과 빵을 헌납해야하므로 빗자루처럼 창고에 처박혀 어서 하루가 가기만을 바란다.
이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학교는 지옥과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유는 제각각인 듯 보여도 그들이 학교를 지옥으로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두 동일하다. 오늘 나의 선택이 내일의 미래를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학교는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계급 상승을 갈망하지만 현실의 학교는 이미 권력이 있는 자에게만 계속해서 권력이 작용하는, 약육강식의 작은 사회일 뿐이다. 선생님들은, 그리고 학교 친구들은 동성애를 하는 이레를 향해 ‘마치 벌레와 같은’ 혐오감을 표시한다. 이레는 공부를 통해 좋은 대학을 가 자신의 사정을 개선하고자 하나 그것이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닫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지금까지는 목적이 있어서 공부해 왔는데…이제는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몰라 하루를 즐기기에 급급한 현신을 향해 선생님은 ‘쓰레기’라고 욕한다. 선생님들에게 최하위 계급으로 대접받는 현신은 자신보다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고 부리며 어설프게 자기 권력을 확인하기 바쁘다.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봉수는 일진들에게 좋은 먹잇감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행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으며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의 불행을 탓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청소년을 위하여
학교는 사회화를 추구하며 바람직한 인간상에 맞춰 학생들을 재조립하는 공간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존속하기 위해선 이러한 학교의 역할이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과연 ‘바람직한 인간상’은 존재하는 걸까. 학교 등급을 높여주었을 때는 이레를 잘 대우해 주다가 동성애 문제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자 입을 싹 닦고 징계실로 보내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사람은, 정녕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와 마찬가지로)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지옥일 뿐이다.
극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남들이 보기에 조금씩 결점을 가졌다. 실로 바람직하지 못한 청소년이다. 이레는 남들과 다른 연애를 하고 현신은 학생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바람직한 학생의 면모를 보인다. 이레는 애초부터 공부를 잘하는 최고의 모범생이었으며 현신은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누구 하나 본질부터 바람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지옥 같은 현실이, 또 지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람직하지 않은 청소년으로 만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해하고 설명하기 귀찮은 학생들을 모두 ‘바람직하지 못한 청소년’이라 규정하고 징계실에 보내듯 기억 속에서, 현실 속에서 잊어버린 게 아닐까. 씁쓸한 한국의 교육현실을 뮤지컬로 만나보는 동안 관객들의 마음은 돌이 가라앉은 듯 내내 무거웠을 터이다. 이 뮤지컬을 단지 향수를 자극하고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작품으로만 만나볼 수는 없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