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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딜리아니 | ||
[디아티스트매거진=송지원] 일반적인 사람의 비율에는 맞지 않는 긴 얼굴형과 그만큼이나 긴 목, 눈동자 없이 텅 빈 눈.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다. 사람을 그릴 때 정말 중요한 눈을 제대로 안 그리다니. 그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림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먼저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저건 또 무슨 기법인지 무슨 심오한 의미에서 저렇게 독특하게 그렸는지 모르겠다며 지레 겁부터 먹고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미리부터 겁을 먹고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도록이나 인터넷을 뒤질 필요는 없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이고 공감하다 보면 그림은 그리 심오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모딜리아니는 미술사상 최고의 미남이자 오늘날 우리가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였다.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번쯤은 만나보길 꿈꾸는 로망. 위험하지만 낭만적인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로맨티스트 예술가 모딜리아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렇게 눈 없는 초상화로 유명한 미남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그의 연인인 잔느 에뷔테른. 두 사람의 만남은 오늘날 연예계 톱기사거리만큼이나 이슈거리가 많은 만남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34살의 남자와 14살 연하인 19살의 여자, 유대교 집안과 가톨릭 집안, 가난한 바람둥이 한량과 좋은 집안에서 자란 화가 지망생 아가씨. 누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사랑에 빠졌고 드라마 같은 러브스토리와 함께 모딜리아니의 재능과 예술세계가 가득 담겨 있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사랑의 결말이 다소 비극적이기는 했으나 방탕한 삶으로 자신을 망쳐가던 모딜리아니에게 잔느는 생애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게 해준 최고의 뮤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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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딜리아니, 잔느 에뷔테른 | ||
잔느를 만나기 전까지 모딜리아니의 삶은 미술작업만 빼면 방탕한 한량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브랑쿠시의 영향을 받아 몰두하던 조각을 그만두고 회화를 그리게 되면서 그림에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치게 되었다. 원시미술과 조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독특해진 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은 그의 개성 있는 화풍을 담고 있었으나 파리의 예술시장으로부터는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다. 그는 가난했다. 계속된 실패와 가난에 좌절한 그의 삶은 점점 방탕하고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곧 술과 마약을 즐기며 수많은 여자를 만나는 바람둥이로 유명해졌고 진지하고 오래가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한 여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는 두 번 딸꾹질하는 동안에만 그녀를 사랑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시기 그의 잘생긴 외모와 반항아적인 매력에 빠져 모델이 되기를 흔쾌히 허락하는 거리의 여자들은 모델료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에게 있어 최고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방탕하게 살아가던 모딜리아니는 어느 식당을 찾았다가 어린 잔느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 잔느에게 다음 만남을 요청했고 잔느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둘의 러브스토리는 시작되었다. 인정받지 못하고 떠돌며 비행을 일삼던 모딜리아니는 밝은 잔느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면서 상처를 치료해나갔고 자기 파괴적이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놓아가던 그림 작업도 다시 잡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둘은 곧 서로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에게는 수많은 스캔들을 뿌리고 다녔고 술과 대마에 빠져 살았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잔느의 가족들은 둘의 교제 사실에 경악했고, 둘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오히려 깊어졌다. 둘은 결국 헤어지지 않았고 잔느는 곧 딸을 낳았다. 모딜리아니는 이 시기에 굉장히 행복해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모딜리아니의 최고로 행복하고 따뜻한 시기로 표현되고는 하는데 그래서인지 원래부터 좋아해서 많이 그려왔던 소년, 소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더 많이 그렸다.
모딜리아니는 잔느를 만난 후 자신의 예술관과 열정을 꽃피우며 잔느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 잔느의 초상화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즈음 모딜리아니는 초상화에 눈동자를 제대로 그려 넣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하루는 자신의 초상화에도 눈동자가 없는 것을 본 잔느가 이유를 물었고 모딜리아니가 대답했다.
‘왜 초상화에 눈동자를 안 그렸죠?’
‘내가 당신을 영혼까지 모두 알게 되면 그 때 당신의 눈동자를 마저 그려줄게요.’
그가 처음부터 초상화에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언젠가부터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것이었다. 비어있는 눈이 그림의 신비롭고 공허한 매력을 배가시키긴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시각적 기법이라 보기에는 뭔가 아쉽다. 우리는 위의 유명한 잔느와의 대화덕분에 그가 눈을 아주 중요한 영혼의 창으로 보았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후에 모딜리아니는 잔느의 영혼과 진실하게 통했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는 죽기 전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잔느의 초상화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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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 ||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잔느가 모딜리아니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가 잔느를 만난 후부터 그리기 시작한 여러 점의 ‘잔느’의 초상화는 오늘날 모딜리아니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잔느를 만나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독특한 분위기의 잔느를 그리게 되면서 특유의 화풍을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목과 얼굴이 길고 형태가 극도로 간결화 되어 우아함과 우수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어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와 초상화의 화풍이 가장 잘 드러나 는 작품인 잔느의 초상화. 이쯤 되면 사랑하는 잔느를 화폭에 담기위한 노력과 열정이 오늘날의 모딜리아니와 그의 명화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잔느가 없었다면 사그라들어가던 모딜리아니가 이런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잔느의 사랑과 도움으로 다시 그림 작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게 된 모딜리아니가 한참 창작의 열정을 꽃피운 시기에 그는 둘째 아이의 임신에 기뻐하며 더욱 열심히 자신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그 노력의 결과로 드디어 생애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그가 그린 나체화들이 풍기문란 죄로 전시금지를 당하면서 개인전은 단 몇 시간 만에 허무하게 끝을 맺게 된다. 그리고 그 날, 그의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으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고 그는 여전히 임신한 아내를 위해 난로를 뗄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아내인 잔느를 친정집으로 보내야 했다. 그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주 그녀의 집 앞에 찾아갔다. 그러나 그를 미워한 잔느의 가족들은 한 번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는 항상 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홀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미 여러 번 맛본 좌절감과 잔느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자신을 점점 더 돌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이미 쇠약해진 몸은 늑막염에 걸리게 되고 하루는 쓰러진 채로 이웃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그는 결국 그곳에서 사망하고 만다.
잔느는 그의 죽음을 듣고 달려가서 이미 죽은 그에게서 한참동안 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일까. 잔느는 임신한 몸으로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려 자살함으로써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랐다. 이후 잔느 식구들의 완강한 반대로 둘은 서로를 그리워하다 죽어서도 합장되지 못한 채 헤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을 지켜본 친구들의 계속된 설득으로 죽은 지 약 10년 만에 합장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모딜리아니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의 유럽은 기성회화를 부수려는 여러 혁신 운동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과 파벌의 물살 속에서 모딜리아니는 어떤 운동에도 동참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세계관에 의해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한 거의 유일무이한 화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인정받기 더 어려웠을 그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마지막까지 함께 한 잔느의 헌신적인 사랑과 유행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의 영혼을 이해하고 그리기 위해 노력했던 화가 모딜리아니. 그런 감정들과 둘의 애절한 사랑이 녹아있을 그의 그림들. 이것이 우리가 나쁜 남자였던 그가 그린 그림을 우아하고 따듯한 감성이 있는 그림이라고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은 그저 한 사람이 살았던 그의 인생과 그가 느꼈을 감정이며 누구나 해보았을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보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추억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행위일 것이다. 다음에 모딜리아니의 눈동자 없는 초상화처럼 난해한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면 카탈로그를 펼치고 인터넷 창을 열어 그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찾기 전에 찬찬이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그림 속에 담고자 한 이야기, 그 속에 녹아있는 화가의 삶, 감정, 애절한 사랑을 먼저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