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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ouard Manet, Nana, 1877 | ||
[디아티스트매거진=정보라] 나나(Nana)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 단어에 관해서 곧바로 어떤 의미를 떠올리기 보다는 그것이 누군가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나는 외국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김나나, 이나나와 같이 한국 여성의 조금 특이한 이름일 수 있다. 혹은 어떤 가수의 예명이거나 일본어로 숫자 7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실제로 나나(Nana)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나나가 옛날부터 유모나 할머니를 상징하는 단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내니와 유사하게), 또는 그 단어가 포함하는 다른 뉘앙스들 때문이라고도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그 단어에 내포된 뉘앙스의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려 한다.
프랑스에서 ‘나나(Nana)’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내포한다. 20세기쯤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용어 ‘나나’는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은어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나나가 누구나 아는 용어가 된 만큼 크게 모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대놓고 사용하지 않는 비속어에 가까운 단어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말은 명성 높은 프랑스의 예술가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인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인상주의자들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작품 중에 <나나 Nana>라는 그림이 있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 중 하나로 여겨지는 마네는 당대 비평가들에게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여 비난 받았을지언정, 신진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다른 많은 예술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예술가들 중에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가 있었다. 에밀 졸라는 후기인상파 화가 폴 세잔과 어릴 적 친우였고, 유년시절 화가를 꿈꿨던 만큼 소설가뿐만 아니라 당대의 화가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유지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마네만을 위한 미술평론을 할 만큼 마네의 그림을 지지했고, 그가 진정으로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용기 있는 화가라고 평가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마네가 그린 그림 속 ‘나나’를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키기에 이른다. 대물림 되는 프랑스 빈민의 삶을 고발하는 소설 <목로주점 L’Assommoir>에서 여주인의 딸로 처음 ‘나나’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에게서 태어나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육감적인 몸매로 남성들을 매료시키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 인물은 이후 그의 또 다른 소설 <나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소설 속에서 그녀는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이성을 유혹하고 재물을 얻으면서 동시에 상류층의 남성들을 타락시키는 팜므파탈(Femme fatale)로 등장한다.
이렇게 졸라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나나는 1877년 상류층 매춘부와 그녀의 고객을 묘사한 마네의 그림 <나나>에서 착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졸라의 소설 <나나>의 겉 표지로도 마네의 이 그림이 종종 사용되어 왔다.
1880년 발간된 졸라의 소설 <나나>는 마네의 그림 못지 않게 온갖 비평과 충격 속에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나나’는 누구나 알만한 인물 전형(type)이 되었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이게 됨에 따라 남자들 사이에서 여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용되는 단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나나, 이전에 평범했을지 모르는 그 이름은 마네와 졸라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를 내포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그 용어는 현대에도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