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이상봉, 후학 양성으로 패션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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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대학원 강의가 진행될 홍익대학교 대학로 캠퍼스 | ||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디자인 교육기관 홍익대학교가 21세기 글로벌 패션산업을 이끌어 갈 인재 육성을 목표로 <패션 디자인>, <패션 액세서리 디자인>, <패션 비즈니스> 3개 전공으로 구성된 패션대학원을 신설, 오는 2018년 3월 개원을 앞두고 있어 패션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이상봉을 초대원장으로 초빙한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은 급변하는 글로벌 패션 분야를 선도하는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현장 중심의 맞춤형 교육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 양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에서 내년 개원을 앞둔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의 초대원장으로 후학 양성에 나선 이상봉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삶과 패션 그리고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대한민국 패션의 미래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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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 초대원장 이상봉 | ||
Q. 이상봉 디자이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울은 물론 파리와 뉴욕, 런던,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를 다니며 패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디자이너 이상봉입니다. 평생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기를 원했고, 불같은 열정을 닮고 싶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기에 ‘디자이너 이상봉’이 되어 줄곧 패션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신 계기는 언제입니까?
패션은 생계를 위해 평생 꿈이었던 연극을 포기해야 했던 제게 나타난 새로운 꿈이자 길이었습니다. 저는 학부시절 전공했던 연극을 포기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선택해야 했던 수선집을 준비하면서 처음 패션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패션을 통해 저와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패션이 가진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패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Q. 패션디자이너를 목표하고 어떤 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셨습니까?
처음에는 수선집을 운영하기 위해 서울국제복장학원에서 패턴, 메이킹 등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고, 때마침 신설된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을 통해 전문적인 패션 디자인 교육을 받으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습니다.
Q. 지금의 디자이너 이상봉이 있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938년 우리나라 최초로 패션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하신 최경자 선생님께서 만드신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은 당대 최고의 패션 전문가들이 교수진으로 계셨는데, 그분들께 배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제 인생에 큰 행운이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 특히 원장님으로 계셨던 신혜순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Q.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노력했던 패션학도 시절의 이상봉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 당시만 해도 세계적인 디자이너나 유명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피상적인 꿈보다는 디자이너로서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는 절실함이 더 컸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취업이었고, 두 번째는 후에 꼭 제 이름을 건 브랜드를 가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Q.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극복의 방법이 궁금합니다.
제 이름 석자를 건 ‘이상봉’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자마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많은 언론사를 통해 소개되었고, 유명 백화점들에 입점하는 행운이 따라 주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37살 어느 날, ‘내게 정말 패션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디자이너로서의 한계에 봉착했을 때에도 계속 디자이너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연극을 포기했을 때처럼 또다시 도망을 갈 것인가에 대해 수많은 고민이 저를 덮치며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이뤄온 성취와 나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아닌 오롯이 제 자신에 대해 집중하면서 그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들을 터득했기에 아직까지 현직에서 디자이너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매일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약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브랜드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서 초청을 받아 패션쇼를 하게 된 것이 해외 진출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 초청 패션쇼를 계기로 파리 패션쇼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후 뉴욕에 플래그샵을 오픈하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는 역시 한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5년 <한국 · 프랑스 수교 12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한글을 모티브로 삼아 처음 선보인 디자인이 제 디자이너 인생에 가장 큰 도약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글이 가진 미적 우수성과 예술적인 영감을 전 세계에 알리며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대중적인 사랑은 물론 제게 디자이너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고 덕분에 현재까지도 제가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큰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게 찾아온 마지막 도전은 바로 체계적인 패션 교육을 통한 우수한 인재 양성으로 대한민국 패션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 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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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 초대원장 이상봉 | ||
Q.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된 이상봉만의 노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고,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다.”라는 저만의 신조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저희 회사 입구에도 걸려있는 문구인데, 출근할 때마다 그 문구를 보면서 매일 제 스스로를 다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패션쇼를 준비하고,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Q. 첫 해외 무대를 가지게 된 계기와 준비 과정 그리고 현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당시 저는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일본의 초청 패션쇼와 함께 런던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불행히 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 패션 인생에서 처음으로 계획했던 일들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에 도전했고, 예상외로 첫 해외 전시의 반응이 뜨거워 그 전시를 계기로 독일 패션 브랜드의 기성복을 디자인할 수 있게 기회가 주어졌고, 프랑스 에이전시와 정식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외 패션쇼에 도전해 5년 후, 해외 패션쇼를 시작하며 ‘이상봉’이라는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Q.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꼽는 최고의 무대에 대한 이야기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제 패션쇼 중 잊혀지지 않는 쇼는 파리에서 한글을 가지고 진행했던 패션쇼와 환경을 주제로 산속에서 진행되었던 패션쇼가 있는데, 산속에서 열린 쇼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 자리를 빛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패션쇼가 끝나고 다 같이 산속에서 강강술래를 해서 그런지 늘 잊혀지지 않고 생각이 많이 납니다.
또 최근, 광저우에서 있었던 평창올림픽 컬렉션 역시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사드로 중국과의 마찰이 날로 심해져 심적으로 부담이 큰 행사였지만 컬렉션을 무사히 마무리했을 때 그동안의 부담들이 일소에 해소되는 기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실 제겐 모든 패션쇼 하나하나가 제 삶의 최고의 무대이자 다음 작품과 쇼의 계기이고 원동력이라 최고의 무대를 꼽으라는 질문이 늘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패션쇼 일정으로 동생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제 삶에서 지워지지 않은 아픔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모든 패션쇼는 그 자체가 제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제 인생이기도 하네요.
Q. 대한민국 최정상의 디자이너에서 대한민국 대표하는 예술디자인 교육기관 홍익대학교의 패션대학원 초대원장으로 후학 양성에 나서셨다. 어떤 마음으로 초대원장을 수락하셨나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디자인의 산실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의 초대원장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전문교육시스템을 구축해 우수한 패션인재 양성을 실현하겠다는 열망으로 용기를 내어 교육자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은퇴 후, 제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시기가 꼭 은퇴 후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은퇴 후 딱딱한 강의실이 아닌 내가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생생한 패션 현장 속에서 학생들에게 패션에 대해 가르치고 소통하는 것이 진짜 패션 교육이 맞지 않나’라는 판단이 들어 홍익대학교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패션은 트렌드를 선도해야 하는 디자인 분야입니다. 교과서에나 실리는 지나간 패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저는 빠르게 변화하는 치열한 패션계 속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통해 제가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패션을 예비 디자이너인 학생들에게 전하며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춘 디자이너 양성을 실현해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패션 디자인 강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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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대학원 강의가 진행될 홍익대학교 대학로 캠퍼스 | ||
Q. 2018년 개원하는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에 대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의 목표?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바로 “세계적인 디자이너 육성”입니다.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만의 특별한 교육방식?
살아있는 현장 교육을 토대로 기업, 디자이너, 교수들의 협업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식 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과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과 연계된 현장 위주의 실무 교육들을 준비 중입니다.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비전?
현장 위주의 전문적인 실무 교육을 통한 경쟁력을 갖춘 전문 패션 인재를 양성해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도 주어진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으로 졸업 후 자신의 브랜드 런칭과 기업 취업 등 학생들의 진로와 목표를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의 비전이자 목표입니다.
Q.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만의 ‘맞춤형 담임제 스튜디오 방식 교육’은 무엇인가요?
단순한 1:1 교육을 넘어, 각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한 학생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후, 학생에게 필요한 다각도의 맞춤형 교육을 통해 전문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교육 시스템입니다.
Q.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과 대한민국 패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에 걸맞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의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양성된 다양하고 우수한 디자이너들이 패션의 한류로 세계를 사로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Q.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에 지원하는 예비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한 말씀(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패션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자 숙명입니다.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은 기존의 학생들은 물론, 현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이 한 단계 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우수한 교수진들과 함께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찾아가는 다양하고 전문적인 교육과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갈 젊은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홍익대학교 패션대학원의 살아있는 교육을 통해, 패션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원하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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