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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mBoom Transparency light box 1445x1180cm | ||
아이의 모습에 이어 그 눈동자로 시선이 머무르는 작품이 있다. 관람객은 작품 속 아이를 매개 삼아 그 눈동자에 비친 현실을 들여다보게 된다. 순수함으로 반짝이는 것만 같은 눈동자 속에는 테러, 핵폭발, 인종차별과 같은 현실 세계의 파편이 박혀있다. 아이는 그저 관조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짐으로 떠넘겨질 것을 예견한다.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서 박대조는 현실의 문제를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동자에 여과 없이 투영시키는 대립적 표현 법을 통해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하며 이들의 눈동자가 좀 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지길 염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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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원 mix media 80x67Cm | ||
박대조가 어린아이라는 대상을 모티브로 삼게 된 계기는 작가 본인의 삶에서 비롯된다. 아이에 대한 간절함에서 시작해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이에 가장 접한 인간형이 어린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작가들이 인물화를 그릴 때 주변인이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 등 본인에게 가치 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삼은 후 회화로 조명하곤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만이 지니고 있는 순수함과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의 세상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보는 이에게는 아이의 존재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는 눈동자이기도 하다. 그가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여행에서 비롯된다. 네팔 여행 중 3000미터 고지에 사는 아이가 학교에 갈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동생을 안고 돌담장 아래 오도카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 그는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눈동자에 비친 슬픔과 순수, 자연과 닮아있는 모습은 감동으로 와 닿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비친 현실은 결국 어른들의 횡포로 인해 생겨난 것들임을 느끼게 된 이후 시작된 것이 렌티큘러(lenticular) 작업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은 시시각각으로 바뀌곤 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슬픔과 순수, 기쁨, 정열 등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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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mBoom Trancyparency print+Light box 1450x1200cm | ||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눈’에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상의 영혼과 철학을 반영한다. 초상화에 능했던 고개지는 인물화를 의뢰 받으면 몇 년 동안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았는데 의뢰인이 왜 그림을 그려주지 않느냐고 물으면 ‘정재아도중(正在阿堵中)’ 즉 눈 속에 정신과 철학과 영혼이 있는데 아직 당신의 정신과 철학과 영혼을 알지 못하므로 당신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일화를 보며 눈동자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린아이라는 순수의 아이콘에 비친 이미지는 핵 전쟁, 인종차별, 테러 등 직접적인 것들이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이양대입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방향제시를 유도한다. 결론적으로 박대조가 ‘아이의 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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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h! Lord trancyparency in light box 139x126C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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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 비단위에 채색+배면조명+색상변환장치 128x122Cm | ||
“열심히 그린다고 그리는 것이 아니고 붓을 놓았다고 안 그리는 것이 아니다.”
박대조에게 그림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신내림과도 같다고 답했다. 어릴적부터 운동을 하던 그는 운동장에 남아 연습을 하다 불이 켜진 어느 교실에서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곳이 바로 교내 미술부였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놓았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동양화에서 출발해 현재 기계적인 요소를 사용하거나 LED 작업과 같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 미술 외의 다른 경험들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동양화가 내적 충만의 시기였다면 박사 과정에서 배운 조형예술 디자인은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해 작업의 영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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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ire mix media 120x135cm | ||
그는 LED작업 이외에도 인간의 시간을 자연에 새겨 놓은 화석이라 할 수 있는 돌에 음각과 먹 아크릴 등을 사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와같은 다양한 재료 속에서 박대조가 근원으로 삼는 것은 소통이다. 최근 비단작업을 선보인 그는 그 예로 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지는 밖에서 그 안이 직접 비치지 않아도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비단 또한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소통이 있기에 이번 작업의 재료로 삼았다고 한다. 영정기법을 사용해 이에 쓰이는 비단에 아교붓으로 한 땀 한 땀 찍어내는 이번 작업은 오랜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다.
수필이나 소설은 시간 예술, 회화나 조각은 공간 예술이라 말한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대조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공감각적 표현의 결과물로 특정 장르로 극명하게 나눌 수 없는 뉴폼(New Form)이라 할 수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예술 또한 사회를 반영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그의 작품 또한 복합 다원화 되어 있는 사회와 닮아있다.
“작가들은 파편적 요소들을 끌어들여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하나의 작품 앞에서도 사람마다 모두 다른 감정을 느끼곤 한다.
즉 소통의 진폭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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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원 아크릴+먹 engrave on jade stone 60×60cm | ||
그의 작품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경험이라 한다. 더불어 경험은 책을 읽거나 여행을 통해 감수성을 받는 간접경험과 본인의 삶을 통해 느끼는 직접경험으로 나누어지는데 좋은 글에서 문자향이 나듯 그림의 향이 나려면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하라는 동기창의 말처럼 본인 또한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 한다. 그 역시 오지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삶 속에서 생활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대조가 추후 보여주고 싶은 작업은 어린아이 이미지와 더불어 노인의 눈동자에 비춰진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껏 어린아이의 눈동자에 비춰진 형상이 주로 부정적 이미지였다면 노파의 눈동자에는 그 속에서 배어나는 행복감이나 연륜을 표현하고자 하며 아이의 눈동자 속 이미지가 강렬한 것들이라면 좀 더 스며드는 이미지로 나타낼 것이라 말한다. 그는 그 밖에도 애완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등 다양한 소통에 대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박대조가 말하는 다름의 미학이 바로 예술의 힘이다. 그의 말처럼 많은 문화와 관습, 이를테면 종교 등 여러 가지가 사멸되었지만 예술의 힘은 다르다. 시대가 변화해도 예술가의 작품은 숨기거나 드러내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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