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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The Stronger”

   
 

[디아티스트매거진=신창우] 연극 “The Stronger”는 중앙동에 위치한 ‘보기드문’이라는 공간에서 열린다. 그곳은 중앙동의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책, 잡지, LP 등으로 가득하고, 그 것들이 주는 묵직함은 오랜 세월 책장의 한쪽을 지키고 있는 책 한 권, 한 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연극이 시작되면 그 무게감은 배가 된다. 두 젊은 배우가 뿜어내는 침묵은 가만히 앉아 있는 나의 허벅다리에 커다란 돌덩이를 올려놓는 듯했다.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을 정도의 정적을 관객에게 주고 나서야 ‘마담’역을 맡은 ‘홍세영’ 배우는 첫 입을 땐다.

 그 첫 입을 땐 이후부터 끝나기까지 약 35분여간 마담은 계속해서 ‘임가영’ 배우가 맡은 ‘마드모아젤’에게 말을 쏟아 던진다. 패배감과 박탈감에 빠진 듯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계속해서 말을 쏟아 낸다. 하지만 마드모아젤는 마치 ‘목계(木鷄)’처럼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마담를 응시한다. 차갑고 날카로운 칼로 마담의 속을 휘젓는 듯, 냉담한 눈으로 그녀를 대한다. 연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일괄된 침묵을 지키며 말이다.

   
 

 2인 극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호흡마저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오고 가는 세세한 모든 것들이 감정과 의식을 넘나드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연극 “The Stronger”도 예외일 순 없다. 거기다 제목도 ‘강자’이다. 나도 모르게 ‘VS’라는 글자가 둘 사이에 놓였지만 보면 볼수록 ‘VS’보단 ‘=’이 생각났다. 연극이 끝이 나고 밖으로 나와 “The Stronger”이라는 말을 곱씹다 보니 나와 길가는 누군가 사이에도 ‘=’ 표시가 있었다.

마드모아젤처럼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린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보편화 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보이지 않는 감시자에게 조종이라도 당한 듯 다들 비슷비슷한 것들을 보고, 듣고, 입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리고 강자를 뽑는다는 것부터가 터무니 없는 이야기지 않을까.

시대가 변화하면 그 시대가 암묵적, 또는 드러나게 인정하는 ‘시대적 우상’도 변화해 왔다. 어느 시대에선 계급이고, 어느 시대 땐 신, 근대로 넘어오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시장이라는 우상을 바라보는 사회로 변화했다. 재미있게도 우상들의 공통점은 말이 없다. 침묵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그리고 사회를 보편화, 평준화시켜 권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 우상들을 바라보며 이 사회를 살아갈까.

TV, SNS, 신문, 영화, 책 등등 쏟아지는 수많은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고 나름의 기준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반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바라봐질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시선에 자신을 맞추어 나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침묵 하는 ‘타인의 시선’에 조종당하고 보편화되는 것이다.

   
 

 연극 “The Stronger”의 마담은 마드모아젤을 응시하며 말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야기들을 한다. 마드모아젤 이라는 여자를 답습한 자신의 모습, 치부는 물론이고 남편과 그녀를 엮어 의심하고 그 의심은 마담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마치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사회 1%를 보며 스스로 만들어내는 패배감과 박탈감을 대변하듯.

어떻게 보면 마드모아젤도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수많은 타인을 상징하는 인물, 자신이 동경하고 우상으로 생각하는 강한 어떤 존재이지 않을까. 그에 반해 마담은 ‘나다움’을 점점 상실해 가는 요즘의 사회를 대변 하는 듯 했다. 마담은 마드모아젤이 실패한 결혼을 비아냥거리며 현재 가정을 꾸린 자신을 과시한다. 그리고 나름 부유해 보이지만 그럴수록 어딘가 모르게 텅 비어 보인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그 누구도 채워 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마드모아젤을 채워 넣으려는 그녀는 마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려는 요즘의 군상들과 같아 보인다.

   
 

 ‘남’과의 비교에서 우위에 선다고 그게 강한 것일까. 그리고 마담이 했던 말 중 “지금은 내가 더 강한 거 같아. 넌 나한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해”라는 말처럼 자신의 것을 한 톨도 내어주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일까.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마담처럼 타인에게서 주워담은 것을 뺏기지 않는다고 해서 강자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마드모아젤은 그 어떠한 것도 내어 주지 않았다. 마담은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마담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연극 “The Stronger” 제목 그대로 ‘강자’의 의미를 곱씹게 해준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계급이나, 신 등의 절대적인 권력에 속박되는 것도 아니고 시체를 보며 ‘내가 언젠간 저렇게 죽겠구나’라고 깊은 생각에 잠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타인이라는 내 옆, 누군가를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눈치를 본다. 그러곤 결국 소리 없는 싸움을 혼자하고 상대가 나보다 강하면 그와 타협하고 답습하기 시작한다. 그 의미 없는 싸움 또는 수없이 많은 경쟁들이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강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이겨야 하는 상태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답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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