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적 인간: 피투와 제작 그 사이에서종교적 현실의 주인공은 인간 [디아티스트매거진=이하영] 종교는 인간만의 현상이다. 따라서 종교적 현실은 인간 존재[1]가 처해 있는 본질적인 긴장을 담아낸다. 신을 믿는 인간은 ‘피투(被投, 환경 및 배경에 내던져짐.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부모 아래서 태어날 지는 결정할 수 없음)’와 ‘제작(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자유로운 미술을 향하여[디아티스트매거진=이하영] ‘갤러리’라는 공간, 나아가 ‘전시’라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자에게는 일상이고 일터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갤러리는 고상한 곳, 실력이 검증돼야 들어설 수 있는 곳, 즉 진입장벽이 높은 곳으로 인식된다. 더욱이 대학생들은 갤러리에서 전시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아직 졸업하지 않은 예비 작가
포기를 통한 재창조[디아티스트매거진=이하영] 미술사가 이곳에서 숨을 쉰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피카소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까지>展은 대략 20세기의 작품들을 통해 근현대 미술의 변화상을 제시한다. 전시에서 소개된 거장들은 ‘포기를 통한 재창조’라는 방식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간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계가 당연시했던 요소들 – 올바른 형태, 구상, 사실,
점의 의미[디아티스트매거진=이하영]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면 곧바로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피카소쯤 되면 저것이 과연 사람인지 반신반의하게 된다. 전근대의 그림들이 잘 닦인 벽돌길이라면, 모더니즘 이래로 많은 구상화는 벌판과 경계가 모호한 데다가 잡초와 들꽃이 무성한 비포장도로가 되었다. 그런데 추상화는 표지판 하나 없는 광야다. 어느 쪽
400년 전의 단순한 삶[디아티스트매거진=이하영] 세상이 복잡해졌다. 할 수 있는 것도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졌지만, 편의와 선택지가 증대된 만큼 마음 써야 하는 일이 늘어버렸다. 커다란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자잘한 것에까지 신경을 쏟게 된다. 평온을 찾아 홀로 미술관을 다녀왔다. 액자 속에서 고요히 미소 짓는 그림들을 보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국립
빈지노의 If I die tomorrow를 통한 죽음으로의 선구 ▲ 빈지노의 사진. [디아티스트 매거진=이하영] 피아노 소리가 짤막하게 들린 뒤, 오색의 빛이 쏟아지는 듯한 도입부가 이어진다. 빈지노는 나지막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만약 오늘 밤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이란 가정으로 시작하는 빈지노의 곡 <If I die tomorrow>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