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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을 맞은 카미유’ (1879) ⓒ Rlbberlin | ||
[디아티스트매거진=문설연] 2011년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미술관전>.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어느 한 작품에 이르렀을 때 홀린 듯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클로드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였다. 죽은 이를 감싸고 있는 온통 흰 천들과 기묘하게도 편안해 보이는 표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임종을 맞은 카미유’의 주인공 카미유 동시유(1847-1879)는 인상주의의 대가 클로드 모네의 첫 번째 부인이다. 물론, 카미유가 서른두 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네는 대가가 아니었다. 2008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네의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된 ‘수련 연못’은 무려 8030만 달러를 호가하지만, 당시 모네는 빚쟁이를 피해서 어두운 밤에 거주지를 옮겨야 했던 가난뱅이였다.
카미유와 모네는 모델과 화가의 관계로 처음 만났다. 카미유보다 일곱 살 연상이었던 모네는 곧 카미유의 깊은 눈동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모네의 아버지는 카미유와의 교제를 반대하며, 금전적 지원 일체를 끊어버렸다. 둘은 모네의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몇 년간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고, 첫 아들을 낳고서도 5년이 지난 후에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둘의 사랑이 퇴색하지 않았음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카미유는 모네의 초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모델의 자리를 차지했다. ‘초록 드레스의 여인, 카미유’, ‘양산을 든 여인’ 등 오늘날 대중과 비평가들 모두에게 인기를 누리는 작품들의 주인공이 바로 카미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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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 드레스의 여인, 카미유’ (1866) ⓒ Kunsthalle Brem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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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을 든 여인’ (1875) ⓒ National Gallery of Art | ||
안타깝게도 카미유가 둘째 아들을 출산한 후 골반암이 악화되고 이는 결국 젊은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임종을 맞은 카미유’에서 카미유의 표정은 유난히 평화롭다. 심지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듯 보인다. 짧은 생애치곤 넘치게 겪었던 궁핍함과 병마로부터 드디어 자유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옅은 회보랏빛 구름에 기대어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카미유의 마지막 초상화는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두려움이나 끔찍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모네가 사랑했던 온화함을 읽어내고 연민과 숙연함을 공유한다.
훗날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언론인인 조르주 클레망소의 대화에서 모네는, 사랑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는 비극적인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뻣뻣해지는 얼굴, 푸른색과 노란색, 그리고 회색의 색조들을 감지하는 것이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붙잡으려는 동기보다 앞섰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모네를 비인간적이라 매도할 수 있을까. 모네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인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나의 불쌍한 아내가 끔찍한 고통을 받다가 오늘 아침 10시 30분에 사망했습니다. 불쌍한 아이들과 홀로 남겨져 있는 이 기분은 정말 비통합니다. 선생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이 편지에 차용증서를 동봉하니, 제가 전당포에 맡겨 놓은 펜던트 목걸이를 찾아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 목걸이는 아내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추억거리입니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꼭 그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어 주고 싶습니다.” -카미유의 의사이자 모네 작품의 구매자인 벨리오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 중-


